"왜, 머리에 여자 속옷을"...

"왜, 머리에 여자 속옷을"...


L씨는 거제에서 제법 이름 꽤나 날리던 개발업자였다. 한때는 거제전역에 개발광풍(開發光風)이 휩쓸고 지나갈 때 제법 많은 부(富)도 축척하였다. 그는 성격도 호탕하고 언변력(言辯力)도 좋고 게다가 유머까지 겸비한 재사(才士)였다.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L씨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낮에 고객과 함께 현장을 답사하고 시청에 들러 인 ‧ 허가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한 후 사무실로 향했다. 어느 듯 12월의 어둠이 짙어 오고 있었다.

L씨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에서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저녁 약속 장소인 고현의 모 횟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를 향하면서 그의 머릿속엔 오늘 접대만 잘 마무리하면 계약이 성사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에 겨워 노래 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는 대 여섯 명의 사람들이 함박웃음으로 그를 반긴다. L씨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예감에 저절로 신이 났다. 술이 몇 순배 돌고 그는 조심스레 계약 이야기를 꺼내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사전에 입을 맞춘 모양 이구동성으로 내일 계약을 하자고 한다. L씨는 신이 뻗쳤다. “오늘 풀코스로 저가 책임지겠습니다.” 여기 까지는 좋았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아직 1차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내일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폭탄주를 퍼붓기 시작한다. 술에 장사는 없는 법.

다들 걸음도 잘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L씨의 강력한 주장에 횟집인근에 있는 주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주점에서 그들은 아가씨들을 불러 광분에 가까운 파티를 연다. 다들 흥에 겨워 너도나도 마이크를 잡고 서로 내가 최고인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일부는 노래책에 소화기를 끼워 촬영을 하고 일부는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머리에 두르고 목에 걸고 난리 부루스를 추고 있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차라리 괴성에 가까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즐거우면 그 뿐이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흘러가고 광란의 파티도 막이 내리고 있었다. L씨는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잡고 있었지만 자신도 어느듯 인사불성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텅 빈 룸에 L씨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룸 밖으로 나와보니 다른 룸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러오고 있었고 계산을 하기 위해 주인을 몇 번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L씨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단골집이고 계산은 다음에 하면 그만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L씨는 갑자기 따끈한 우동 생각이 간절했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고현사거리 인근 경남은행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 있는 포장마차 우동이 자신의 입맛에 딱 맞았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였다. L씨는 내일로 잡혀있는 계약 건 때문에 걸어가면서 담배를 한 대 피어 물고 신이 나서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것이 아닌가. L씨는 자신의 몸에 뭐가 묻었는지 찬찬히 둘러보아도 딱히 이상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 참 이상하네” L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포장마차에 도착했다. 그는 뒤돌아서 있던 아주머니에게 “아줌마 저 왔습니다. 우동 한 그릇 말아 주이소”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L씨의 말에 어묵을 끼고 있던 아주머니가 돌아 서서 L씨에게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하려다 순간 “아이고 이 사람아 그기 뭐꼬, 머리에 빤수(팬티)를 지랄한다고 덮어 쓰고 있나.” 아주머니의 말에 L씨는 손이 번개처럼 머리로 향했다. 몇 초 후 그의 손에는 새하얀 여자 속옷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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