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이 내린 최고의 복싱인간 '슈거레이 레너드'
슈거레이 레너드가 어떤 선수라고 묻는 다면 이 한마디로 그를 설명하면 된다.
"복싱을 예술로 승화시킨 선수". 복싱의 역사 이래 그 누가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완벽한 테크닉, 정확하고 번개같이 빠른 펀치, 전광석화 같은 푸트워크, 상대의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하는 동물적인 감각, 슈거레이 레너드는 1980년대 웰터급, 미들급의 전성시대를 주도했던 주역이었다.
레너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작은 도시 월밍턴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본명은 레이 찰스 레너드다. "슈거" 라는 별명은 전설적인 복서 슈거 레이 로빈슨에서 따온 것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여 라이트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 화려한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프로로 전향한다. 이때까지의 아마 전적은 68연승을 포함해서 150전 145승(75KO) 5패.
이 후 그는 3년간 무패의 전적으로 1979년 푸에르토리코의 천재 복서 윌프레도 베니테즈와 WBC(세계복싱평의회) 웰터급 타이틀을 벌인다.
지금은 세계타이틀전이 12라운드 이지만 당시는 WBA(세계복싱협회), WBC 양대 기구 모두 15라운드로 진행하였다. 14라운드 까지는 레너드가 포인트 면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마지막 운명의 15라운드. 양자는 링 중앙에서 맞붙었다. 그들에게 클린치는 사치였다. 마치 비무시합에 나선 무사와 같았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주먹을 날리는 양 선수, 레너드의 양 훅이 베니테스의 턱에 적중한다. 이것으로 시합은 끝난다. 신은 레너드를 선택했다.
그때 당시 해설자는 마지막 15라운드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오늘 복싱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것은 진정한 사나이의 아름다움 이었다”.
당시 웰터급, 미들급에는 레너드를 제외한 전설의 3인방이 있었다. 링의 도살자 마빈 헤글러, 디트로이터의 저격수 토마스 헌즈, 돌주먹 로베르토 듀란이 그들 이었다. 그들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었다.
레너드가 타이틀을 획득하자 프로복싱 프로모터의 대부 돈 킹이 그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1980년, 그에게 찾아 온 첫 번째 빅 매치는 파나마의 영웅 돌주먹 로베르토 듀란과의 방어전이다. 레너드는 이 시합에서 프로 생애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한다. 듀란의 15회 판정승.
절치부심, 레너드는 5개월 후 11월 25일. 듀란과 재 시합을 가진다. 결과는 8회 TKO승(훗날 이 시합은 두고두고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 경기 후 레너드는 1981년 한 체급 위의 우간다 영웅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아유브 칼룰레와 타이틀매치를 치른다. 그는 36전 무패의 챔피언 이었지만 레너드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9회 TKO승.
2체급 석권 후, 그는 다시 웰터급으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격수 토마스 헌즈 였다. 헌즈는 멕시코의 강타자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를 2회 KO로 꺾고 WBA 웰터급 타이틀을 손에 쥔 후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1981년 9월 17일 낮, 라스베이가스 시저스 펠리스 특설링에 2만 5천명의 관중과 전 세계 수억 명의 복싱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자는 숙명적인 대결을 펼치게 된다. 이 시합은 대전료 포함한 흥행료가 무려 5천만 달러였다.
당시 레너드는 31전 30승(21KO) 1패, 헌즈는 32전 32승(30KO)을 기록중이였다.
역사적인 대결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양자는 1회부터 난타전으로 시작한다. 초반은 빠른 발과 현란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레너드의 우세, 중반 이 후 헌즈의 스트레이트 같은 잽에 고전한다. 그러나 10회 이 후 헌즈는 체력저하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초반 KO승이 많은 것이 헌즈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약점이었다.
운명의 14회, 공이 울리자마자 레너드는 지친 먹잇감을 향해 돌진한다. 순간 전광석화 같은 라이트 훅이 헌즈의 관자놀이에 적중한다. 비틀거리면 뒤로 물러서는 헌즈를 쫒아 가며 레너드는 승리를 확신 한 듯 두 손을 번쩍 들며 다가간다. 이 장면은 복싱팬들에게는 잊혀 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번 본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매처럼 몰아 부친다.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킨다. 14회 TKO승.
세기의 시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그는 부루스 핀치와 방어전을 치른다. 결과는 3회 KO승. 그러나 그는 시합 같지도 않은 경기에서 치명적인 눈 부상을 입는다.
이 부상의 여파로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전 세계의 복싱팬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그가 떠나고 없는 사각의 링엔 수많은 경기가 계속되었지만 가슴 뿌듯한 감동을 찾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함이 있었다.
레너드를 향한 전 세계 복싱팬들의 애정과 그리움이 그를 다시 링으로 부른다. 그때가 1987년 2월 추위가 사그러지는 늦겨울에 홀연히 나타난다.
링으로 복귀하자마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전설의 3인방 중 한사람인 미들급 챔피언 링의 도살자 마빈 헤글러 였다. 헤글러는 레너드의 시합 전까지 WBC 미들급 12차 방어에 성공하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가 미들급 최고의 복서 카를로스 몬존이 세운 14차 방어를 깰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헤글러는 당시, 26전 전승 26KO의 야수 존 무가비와 저격수 토마스 헌즈, 돌주먹 로베르토 듀란을 차례로 KO로 진압하였다. 명실상부 천하 일인자였다.
1987년 4월 6일 미국 라스베이가스 시저스 펠리스 야외 특설링. WBC 미들급 타이틀매치. 1만 5천명의 관중, 전 세계 75개국 동시 생중계, 대전료는 양 선수 합쳐 2,300만 달러였다.
15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마지막 라운드 종료공이 울리고 양 선수는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의 선전을 치하했다. 결과는 레너드의 판정승(이 경기 후 헤글러는 은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3체급을 석권한 레너드는 1988년 WBC 수퍼미들급 도니 랄롱드를 꺾고 4체급을 재패한다. 이 후 라이트 헤비급마저 손에 넣어 면서 당시로는 전무한 5체급을 석권하게 된다.
1991년 레너드에게 어둠이 짙어 오고 있었다. 마지막 타이틀인 라이트 헤비급마저 테리 노리스에게 넘겨주고 은퇴를 선언한다. 1997년 노쇠한 나이로 다시 링에 복귀하였으나 핵토로 카마쵸에게 패한다.
레너드는 복싱선수로는 최초로 1억 달러를 번 선수로 기록되고 있고 1980년대 세기의 복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복싱실력 만큼이나 사생활도 모범적 이였으며 신사, 그 자체였다.
“상대를 쓰러트리는 건 내 주먹이 아니라 나의 냉철함이다” - 슈거레이 레너드
▲생애 통산 전적 40전 36승(25KO) 3패 1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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