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은 복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신이 빚은 복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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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7월 12일 멕시코 소노라주(州) 오베르곤, 신은 이 땅에 장차 무림의 신으로 추앙받게 될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를 보낸다. 그는 5남 5녀 중 막내였다.

차베스의 아버지는 철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 그의 일상은 버려진 철도가 유일한 놀이터이자 안식처였다. 가난한 탓에 그의 어머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옷을 세탁해주고 또 다림질을 해주며 10남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란 차베스는 언젠가 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꼭 새 집을 사주겠다는 의지를 가슴속에 새겼다.

세상이 녹록치 않음을 알아갈 쯤 차베스 일가는 미국 캘리포니아만(灣)이 바라보이는 쿨리아칸으로 이사를 간다.

자신의 위, 두 형 로돌포와 라파엘이 복싱을 끔찍이 좋아해 두 형은 일찍이 복싱도장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소년 세자르는 멕시코 복싱의 전설 루벤 올리바레즈를 존경하지만 복싱보다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이 다니던 체육관에 있던 당시 멕시코 페더급의 톱 복서 후안 안토니오 로페즈가 찾아온다. 로돌포와 라파엘이 그의 동생 세자르의 타고 난 천재성에 대해 개거품을 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페즈의 끈질긴 설득에 소년 세자르는 글로브를 낀다.

차베스는 만 16세에 아마로 데뷔한다. 1979년 멕시코 골든 글로브 대회우승을 포함하여 14승 1패의 전적으로 아마생활을 청산한 후, 그 해 위의 두 형과 함께 로페즈의 매니저 라몬 팰릭스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프로세계의 진입을 위해 준비한다.

1980년 2월 5일, 차베스는 쿨리아칸에서 안드레스 펠릭스를 6회 KO로 제압하고 강호에 첫발을 내딛는다. 89연승, 전설의 시작이었다.

차베스는 정통파였다. 어떠한 변칙이나 술수는 쓰지 않았다. 평범한 속에 강력함이 있었다. 단순한 무공을 십성으로 끌어 올려 자신만의 무공으로 재창안한 그는 절세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1983년 4월까지 그는 파죽의 36연승(31KO)을 달린다.

차베스의 거침없는 진군에 그의 두 형은 빛을 바라지도 못한 채 83년,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고 미련 없이 강호를 떠난다. 또 자신의 강호생활의 등대였던 로페즈가 삼류로 전락하며 이제 더 이상 차베스가 소속된 문파의 간판고수가 아니었다.

묵묵히 앞만 보고 전진하던 차베스에게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온다. 1983년 5월 1일, 차베스와 같이 무공을 연마하던 호세 루이스 라미레즈가 WBC 라이트급 결정전에 나가 결과는 아깝게 석패하지만 차베스는 오픈 경기에 출전 하비에르 훌라고스를 4회에 주저앉힌다. 되는 놈은 되는 법. 차베스의 강력함에 그 경기에 참관한 무림 최고의 상단을 보유한 거물 프로모터 돈 킹이 그를 스카웃한다. 차베스는 멕시코를 떠나 강호의 본고장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

막강한 자본을 등에 업은 차베스는 슈퍼 페더급의 챔피언 결정전에 도전장을 내밀기전까지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6연승(5KO)을 쓸어 담는다.

무관의 제왕으로 강호를 전전한지 어언 4년 하고도 7개월,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절대적인 지존 헥토르 카마쵸가 반납한 왕좌의 자리를 놓고 동급 1~2위 간의 챔피언 결정전에 나서게 된다.

1984년 9월 13일 미국 LA 올림픽 오디트리움, 당시 동급 1위 마르티네스는 33승(20KO) 1패 2무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차베스는 43연승(37KO)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화려한 전적에 비해 절세고수와의 시합이 전무한 차베스를 두고 당시 도박사들은 마르티네스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가는 달리 차베스의 무공이 마르티네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무명의 차베스는 저돌적으로 공격해 오는 마르티네스의 공격을 무력화함과 동시 짧은 펀치로 인사이드를 파고들어 착실하게 공격 포인트를 쌓아간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격차는 더욱더 벌어진다. 8회, 그동안 쌓인 데미지로 확연하게 지쳐있는 마르티네스와 달리 차베스의 공격은 신이 뻗힌 듯 가속도를 붙인다. 종료직전 주심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마르티네스를 보며 경기를 중단시킨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지존의 반열에 오른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두 살이었다.

지존에 오른 후 6개월 뒤 차베스는 1차 방어에 나선다. 상대는 전설의 지존 알렉시스 아르게요 그리고 살바도르 산체스와 대전한 바 있는 세계랭킹 단골이자 백전노장 미국의 루벤 카스틸요. 카스틸요는 62승(35KO) 4패 2무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는 파이터였다.

차베스에게 이번 방어전은 일종의 시험무대였다. 무명에서 지존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급체급에 세 명의 맹주가 존재하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돈 킹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즉, 강력한 도전자를 붙여 차베스의 한계를 확인하는 싶은 것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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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4월 19일 캘리포니아 잉글우드에서 치러진 1차 방어전은 차베스가 결코 녹록치 않은 맹주임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젊은 지존 차베스는 초반부터 패기와 절세신공으로 도전자를 윽박질러 6회 2분이 지나자 카스틸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한다.

패배 후 카스틸요는 “차베스는 아르게요도 산체스도 아니었다. 그만의 뛰어난 기술과 펀치를 지녔고 결코 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초절정의 고수”라고 차베스를 추켜세웠다. 그랬다. 역시 매는 맞아 본 놈이 아는 법이었다.

몸 풀듯이 가볍게 1차 방어전을 치른 차베스는 2차 방어 상대로 로저 메이웨더를 지목한다. 로저 메이웨더는 훗날 무림의 절대지존 될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삼촌이다. 메이웨더는 사무엘 세라뇨로부터 왕좌를 탈취한 후 3차 방어전에서 록키 록클리지에게 패한 후 차베스에게 생애 두 번째 도전인 셈이었다. 당시 메이웨더는 22승(14KO) 2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1985년 7월 7일,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카지노 리베라 호텔 특설 링에서 벌어진 시합은 차베스의 절세신공에 메이웨더는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5분 30초 만에 패대기치진다. 그렇게 닭 모가지 비틀듯 가볍게 2차 방어의 벽을 넘고 있었다.

타고난 전사의 기세와 맹주의 위엄마저 더 해진 차베스는 1987년 8월 21일까지 자신의 권위에 항거해 온 일곱 명의 살수를 도륙한다. 그 중에는 로키 록클리지, 후안 라포테, 프란시스코 데 크루즈 등 절세고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9차 방어까지 마무리한 차베스는 자신의 체급에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확신하고 한 체급 위의 라이트급을 째려보기 시작한다.

차베스의 야심을 확인한 돈 킹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WBA 라이트급 맹주 푸에르토리코의 강타자 에드윈 로자리오를 꼬드긴다. 돈 킹의 집요한 유혹에 로자리오는 덥석 미끼를 물고 만다.

1987년 11월 21일, 라스베가스 힐튼 아웃도어 아레나. 당시 로자리오는 31승(27KO) 2패의 링 레코드를 기록하고 있었고 이에 맞선 차베스는 56연승(45KO)을 달리고 있었다.

경기 초반 로자리오는 빠른 발과 날카로운 잽으로 차베스를 괴롭히지만 라운드를 거듭 할수록 차베스의 인파이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11라운드에 장렬하게 산화해 간다.

두 체급을 석권한 차베스는 1988년 4월 16일, 20승(10KO) 1무승부의 파나마 출신 로돌포 아구에르를 라스베가스 힐튼 호텔 특설 링으로 불러 6회에 박살내고 1차 방어를 마친다.

거 칠 것이 없는 차베스는 WBC 왕좌마저 넘본다. 선봉은 대상단의 맹주 돈 킹이 나선다. 돈이 되는 비무는 빠르게 성사 되는 법. 호세 루이스 라미레스는 흔쾌히 수락한다.

라미레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107전(101승 82KO 6패)의 백전노장이다.

1988년 10월 29일, 라스베가스 힐튼 센터에서 라이트급 천하통일을 두고 위대한 두 전사가 맞붙는다.

차베스의 우세 속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양웅은 11라운드 라미레스의 과다 출혈로 비무는 중단되고 판정으로 우열를 가리게 된다. 결과는 96:94, 95:93, 98:91로 차베스의 만장일치 판정으로 끝난다. 라이트급으로 전향한 후 1년 7개월 만에 천하는 차베스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차베스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야심은 끝이 없었다. 또 다시 그는 한 체급 위 슈퍼라이트급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시 슈퍼라이트급 맹주는 과거 차베스와 대전한 바 있는 로저 메이웨더였다. 메이웨더는 과거의 치욕을 설욕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1989년 5월 13일,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초반부터 맹공을 휘두르는 차베스에 맞서 메이웨더는 끊임없이 잽을 내밀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비무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11라운드 개시 공이 울렸지만 메이웨더는 자신의 코너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차베스의 10회 RTD승(KO승과 동일)으로 3체급 달성의 위업을 이룬다.

절대지존의 반열에 오른 차베스는 두 달에 걸쳐 두 번의 방어전을 치른다. 첫 번째 제물은 삼미 후엔테스, 11회 시작공이 울림과 동시 도전자의 코너에서 타올을 던진다. 이어 44연승(20KO)에 빛나는 아르헨티나의 기교파 복서 알베르토 데 라스 메르세데스를 차베스의 조국 멕시코로 불러 3회에 때려눕히고 2차 방어를 마무리한다.

차베스의 독주에 IBF의 맹주 미국의 멜드릭 테일러가 통합타이틀을 걸고 진검승부를 요청해 온다. 전쟁을 마다할 차베스가 아니었다.

1990년 3월 17일, 라스베가스 힐튼 호텔 특설 링에서 불굴의 두 전사가 맞붙는다. 당시 테일러는 24승(14KO) 1무승부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고 이에 맞선 차베스는 68연승(53KO)을 달리고 있었다. 무패가도를 달리는 전사끼리의 맞짱이었다.

초반부터 8회까지 기세를 잡은 쪽은 테일러였다. 근소하게 테일러의 우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마지막 4라운드에 사활을 건 차베스의 맹공이 시작된다. 12라운드 종료 30초를 남기고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테일러의 안면에 그림처럼 꽂힌다. 그것으로 혈전은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날의 혈투는 링 매거진에서 선정한 1990년 올해의 파이터로 선정되고 훗날 1990년대 최고의 파이터로 선정되기도 한다.

시합 후 테일러측에서는 판정으로 가면 테일러가 이길 수 있었다며 주심이 경기종료 2초를 남기고 KO승을 선언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거세게 항의하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1990년 12월 8일, 대한민국의 안경덕이 WBC/IBF 통합타이틀 도전자로 나서 야심을 불태우지만 미스매치라는 오명만 쓴 채 3회 TKO로 주저앉고 만다. 이어 4개월 후 존 듀플레시아를 4회에 날려버린 후 IBF 타이틀을 반납한다.

이 후 차베스는 두 차례에 걸쳐 타이틀을 방어한 후 8차 방어를 준비한다. 상대는 3체급을 석권한 절세고수 푸에르토리코의 헥토르 카마쵸. 카마쵸는 당시 40승(17KO) 1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2년 9월 12일, 라스베가스에 치러진 비무는 한마디로 12라운드 내내 피를 부르는 싸움이었다.

결과는 차베스의 심판전원 일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린다. 이 시합 후 멕시코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 의전차량을 차베스에게 내주기도 하였다.

카마쵸와의 대전 후 차베스는 4번의 방어전을 치러 KO승 세 번과 생애최초의 무승부를 기록한다. 그렇게 12차 방어전을 마친다. 89연승의 대기록이었다.

거침없이 진군하던 차베스가 일격을 맞는다.

1994년 1월 29일, 자신의 12차 방어전에서 48승(40KO) 2패 1무의 강타자 프랭키 랜달에게 2대1 판정으로 패함으로서 생애 최초의 검은 별을 기록에 올리게 된다.

절치부심, 4개월 후 차베스는 랜달과의 재대결에서 9회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되면서 8회 판정승으로 잃어버렸던 왕관을 되찾아 온다.

맹주의 자리를 돌려받은 후 그는 네 차례 방어전을 승리로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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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위대한 차베스의 왕국에 노을이 짙어 오고 있었다. 붉은 노을의 실체는 미국이 자랑하는 영건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였다. 호야는 두 체급을 석권하고 3체급 정복 재물로 차베스를 선택했다. 당시 호야는 21연승(19KO)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1996년 6월 7일, 라스베가스. 서른 네 살의 백전노장 차베스와 스물 세 살의 영건 호야는 배수진을 치고 맞붙는다. 도전자 호야는 세계타이틀매치만 9연승(7KO)을 기록한 반면 차베스는 31승(21KO) 1무 1패의 경이로운 세계타이틀매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1회, 전반은 조심스런 탐색전을 전개하다 중반부터 양웅는 쉴 새 없이 잽을 내밀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후반부에 접어들어 호야의 날카로운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에 차베스의 눈위를 찢어 선혈이 낭자 한 채로 1라운드를 마친다.

2회와 3회, 양자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친다. 4회에 들어 호야는 맹공을 퍼붓는다. 종료 30초를 남기고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차베스를 링 닥터에게 상처를 살피게 한다. 링 닥터는 상처가 너무 깊어 경기속개 불가를 선언한다. 그렇게 차베스는 생애 최초 TKO패를 당한다. 위대한 차베스의 왕조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승리한 호야는 훗날 무림역사상 최초로 6체급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룬다.

호야에게 패한 차베스는 세 차례의 재기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1998년 3월 7일 동급 맹주 미구엘 앙헬 곤잘레스에게 도전하지만 무승부로 권토중래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998년 9월 18일, 차베스는 체급을 올려 웰터급의 맹주가 되어 있는 오스카 델라 호야에게 도전해 보지만 8회에 무너지고 만다.

이후 차베스는 지다 이기다를 반복하다 2005년 그가 45세가 되던 해 파란만장했던 강호를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그는 타고난 성실함과 천재적인 재능을 갈고 닦음으로 27년간 강호를 평정하고 무림최고의 고수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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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연승의 대기록에 혹자는 초반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의 업적이 빛바래지는 않을 것이다. 훗날 그의 아들 홀리오 세자르 차베스 주니어가 강호에 입문하여 아버지와 같이 3체급 위업을 달성한다. 그리고 ESPN은 무림역사상 위대한 복서 100인 가운데 차베스를 24위에 그 이름을 올려놓았다.

생애 통산 전적  115전 107승(86KO) 6패 2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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