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 전사의 후예 ‘리틀 레드(Little Red)’ 대니 로페즈
사각의 링은 냉정하다. 비무장(比武場)에 오르면 누구의 도움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이 갈고 닦은 무공과 육신만이 수많은 살수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의 세계다.
47년 전, 9년 간 강호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무림을 공포에 떨게 한 전설의 살수(殺手)가 있었다. 그와 치르는 비무는 선혈이 낭자했으며 또 다른 전설 살바도르 산체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존의 자리를 두고 겨루는 천하쟁패 대전의 승리는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그는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에서 온 악귀였다. 그래서 세인들은 그를 가리켜 ‘리틀 레드(인디오의 전사)’ 혹은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 불렸다.
장차 무림역사상 공포의 대명사로 남을 대니 로페즈가 1952년 7월 6일, 미국 유타주 뒤센카운티의 도시 뒤센에서 태어난다.
그는 인디언의 후예로서 선조들로부터 전사의 피를 물러 받았다. 그의 선조의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최초의 이민자들인 그들은 오늘날의 베링 해협이 위치한 육교를 건너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동물의 무리들을 따라 대륙을 떠돌아다니던 사냥꾼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 즉 로페즈의 선조였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후 외세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부족과 전통 그리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투쟁의 역사였다. 로페즈 역시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강호인생은 피의 역사였다.
로페즈가 열아홉이 되던 1971년 5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천사들의 도시(LA)에서 스티브 프래조레를 비무시작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단 일검(一劍)으로 베고 강호에 피바람의 서막을 알린다.
바람에 흩날리듯 깡마른 몸매에 죽립(竹笠)밑으로 안광을 감추고 묵도(墨刀)한 자루로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한다.
강호에 발 담근 지 불과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살수 스물세 명을 도륙(屠戮)낸다. 그중 22명은 마지막 라운드 종소리를 경험하지 못한다. 더욱더 가공할 일은 22명중 17명은 12분을 견디지 못하고 로페즈의 묵검아래 이슬처럼 사라져갔다. 희생자 명단에는 멕시코의 괴물 루벤 올리바레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침없이 천하 무림을 휩쓸고 다니던 희대의 살수 로페즈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강호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 1974년 5월 24일, 66전에 빛나는 노련한 자객 보비 차콘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그 다음에 1월 18일까지 네 번의 대전 중 세 번을 패한다.
자신의 자만과 게으름을 질책하며 깊은 산중에서 내공을 증진한 후 다시 강호로 돌아 온 그는 7연속 KO승을 쓸어 담는다. 어느 듯 지존의 자리 문턱까지 다가와 있었다.
1976년 11월 6일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아크라 스포츠 스타지움. WBC 세계페더급 타이틀매치.
당시 맹주 ‘가나의 별’ 데이비드 코테이는 멕시코의 전설 루벤 올리바레즈를 15회 판정으로 제압하고 1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프리퍼 우에하라를 12회에 요절낸다. 이어 후쿠야마 신고를 3회에 작살내며 2차 방어를 마친 상태였다. 코테이는 33승(20KO) 2무 2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에 맞선 로페즈는 31승(30KO) 3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링 중앙에서 맞선 두 검객은 선혈이 낭자한 혈투를 벌인다. 11회 한 차례 다운을 빼앗은 로페즈가 원정의 텃세를 물리치고 꿈에 그리던 제왕의 자리에 오른다. 왕좌에 오른 로페즈는 이후 34개월 간 항거한 숱한 자객들을 도륙한다.
천하를 쟁취한 후 로페즈의 절세무공에 강호의 자객들은 지례 겁을 먹고 쉽사리 비무를 신청하지 못한다. 두 차례의 논타이틀전에서 2회와 6회에 차례로 어쭙잖은 피라미들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진정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독이 밀려올 쯤, 멕시코의 강타자 호세 토레스가 진검승부를 요청해 온다. 맹주에 오른 지 10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토레스는 26승중 24KO승을 기록하고 있는 강타자였다.
1977년 9월 13일 LA 올림픽 대강당에서 펼쳐진 1차 방어전은 허세로 가득 찬 도전자를 7회 레프리 스톱 승으로 제압한다.
그 다음 해 2월, 와신상담 복수의 칼을 갈아 온 전 맹주 데이비드 코테이와 향락의 도시 라스베가스 힐턴호텔 특설 링에서 맞붙지만 코테이의 초반에 펼쳐진 초식이 무색하게 4회부터 몰아친 로페즈의 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6회에 무너지고 만다. 코테이는 신을 원망하며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두 차례의 방어전에서 피를 본 로페즈는 브라질의 테크니션 호세 데 파울라를 2차 방어전을 치른 같은 장소로 불러들인다. 파울라는 27승(6KO) 2무 2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파울라는 다양한 무공으로 로페즈를 흔들어 보지만 그런 어린애 같은 솜방망이는 살수 로페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6회가 한계였다. 그렇게 닭 모가지 비틀듯 가볍게 3차 방어의 벽을 넘고 있었다.
타고 난 살수본능에 맹주의 위엄마저 더해진 제왕 로페즈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의 왕국을 구축해 가기 시작한다. 1978년 9월 15일, 아르헨티나의 백전노장 후안 도밍고 말바레즈가 자신의 경험을 믿고 비무를 신청해 온다. 로페즈는 망설임 없이 격전의 장소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슈퍼 돔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말바레즈는 43승(26KO) 7무 6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고 제왕 로페즈는 37승(35KO) 3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비무는 너무나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는다. 2회 45초 만에 도전자는 사각의 캔버스에 나뒹군다. 자신의 내공에 걸맞지 않는 초라한 패배였다.
말바레즈를 내려 앉힌 후 한 달이 지날 쯤 돌연 로페즈가 이탈리아로 원정을 떠난다. 자객축에도 끼지 못하는 필리핀 출신 필 클레멘테가 5차 방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클레멘테는 11승(3KO) 1무 8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전설의 살수에게 도전장이 접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 가지 암수는 가지고 있었다.
4회까지 진행된 비무에서 클레멘테는 맹주 로페즈의 급소를 끊임없이 가격하는 등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암수를 남발하다 반칙패를 당한다. 그렇게 떨떠름한 5차 방어가 지나가고 있었다. 로페즈는 한국의 속담을 새겨들어야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제왕의 위엄에 먹칠을 당한 로페즈가 분도 채 삭히기 전에 스페인의 로베르토 카스타논이 무적함대를 이끌고 로페즈의 성지 유타주로 쳐들어온다. 뱃머리엔 ‘타도 로페즈’라는 선명한 핏빛 깃발을 내걸고 있었다.
분노한 제왕은 잔혹한 살수로 변모하여 그의 절정 경공술인 답설무흔(踏雪無痕)으로 훗날 쇼트 트랙 ‘안톤 오노’의 마공(魔功)의 성지가 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달려간다.
카스타논은 30승(20KO) 무패의 절정고수였다. 하지만 카스타논는 로페즈의 절정무공에 6분도 버티지 못하고 피범벅이 되어 패대기 당한다. 가공할 살수의 손속에 눈에 공포가 어린 채 그가 자랑하던 무적함대는 마치 명량에서 이순신장군에게 당한 일본의 수군장 도도 다카노리(藤堂高虎)처럼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다. 그렇게 6차 방어의 벽마저도 간단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순조롭게 항해하던 로페즈에게 또 한명의 절세고수가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텍사스 산 안토니오 출신의 마이크 아얄라였다.
아얄라는 21승(11KO)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는 영건이었다. 그는 단신에 한 눈에 고수임을 짐작할 수 있는 살기를 내 품고 있었다.
1979년 6월 17일, LA 스포츠 아레나 특설 링에서 거행 된 쟁탈전은 선혈이 낭자한 혈투였다. 초반부터 거세게 밀고 오는 도전자의 초식에 로페즈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의 스타일처럼 중반이 지나면서 엔진이 가동되기 시작하여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진다. 10회를 지나면서 저울추는 지존 로페즈쪽으로 기울더니 15회 1분이 지날 쯤 아얄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염없이 천정을 바라본다. 그걸로 끝이었다. 비무 후에 확인한 결과 채점표는 2:1로 아얄라의 우세였다. 로페즈의 역전이었다. 이 경기는 1979년 ‘링 매거진’이 선정한 올 해의 시합으로 정해진다. 피로 물들인 7차 방어전이었다.
아얄라와의 혈전으로 입은 내상은 3개월이 지나면서 회복되자, 그 해 9월 25일 11승(9KO) 1패의 도미니카공화국 호세 카바를 전 시합을 치른 장소로 불러 3회 1분 41초 만에 주저앉히고 8차 방어를 마친다. 이로서 로페즈는 확실하게 장기집권의 틀을 다진다.
하지만 강호에 영원함은 없는 법. 로페즈에게 노을이 짙어 오고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노을의 정체는 멕시코였다. 또 한명의 인디오 전사의 후예 살바도르 산체스였다.
1980년 2월 2일, 애리조나에서 치러진 로페즈의 9차 방어전은 영건 산체스의 절세무공 드나듦의 미학 ‘산체스 존’에 막혀 로페즈는 13회가 끝날 쯤, 만신에 피를 뒤집어 쓴 채 TKO로 무릎을 꿇는다. 4개월 후 라스베가스에서 권토중래를 꿈꾸지만 전 시합보다 1회를 더 버티다 장렬하게 산화해 간다.
그렇게 위대했던 전설의 살수 로페즈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로페즈는 마흔 살이 되던 8년 후 다시 링에 올라오지만 2회를 채우지 못하고 그의 파란만장했던 강호여정을 마친다.
인디오 전사의 후예 ‘대니 로페즈’. 그는 항상 초반의 열세를 뛰어 넘고 역전 KO로 세인들을 열광케 했다. 방어보다는 호전적인 그의 스타일은 언제나 피를 불렸다. 그가 떠난 자리는 산체스가 뒤를 이어 인디오 전사의 명예를 지켰다.
2012년, 위대한 살수 로페즈는 대한민국의 장정구와 함께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생애 통산 전적 48전 42승(39KO) 6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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