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백작’ 알렉시스 아르게요

‘링 위의 백작’ 알렉시스 아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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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알렉시스 아르게요'


2009년 7월 1일 중남미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市, 이른 새벽 적막을 깨고 한발의 총성이 울린다.

현직 니카라과 수도 시장의 자살이었다. 그 이름은 알렉시스 아르게요. 우린 정치인 아르게요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페더급, 슈퍼 페더급, 라이트급 3체급을 석권하고 복싱 사상 최초로 4체급 석권에 도전한 전설의 복서로 기억하고 있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올드 복싱팬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178㎝의 훤칠한 키, 트레이드 마크인 멋진 콧수염, 수려한 외모. 팬들은 그를 가리켜 링 위의 백작 혹은 고독한 파괴자라 불렸다.

시합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를 칭찬하는 깨끗한 매너로도 유명했다.

“나와 싸우는 상대는 적수이지 결코 적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이고 팬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공동 운명체다. 그리고 상대를 눕히고 상대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건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복서로서, 인간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알렉시스 아르게요는 1952년 4월 19일, 중남미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시에서 태어났다.

1968년 10월 26일, 아르게요는 만16세의 나이에 이스라엘 메디나를 단 50초 만에 링 바닥에 패대기치고 강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입문 후 3연승을 달리다 두 번의 패배를 당한 후 1971년 12월 까지 파죽의 16연승(13KO)을 거둔 후 또 다시 무명의 조지 레이어스에게 6회 TKO로 일격을 당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WBA 페더급 맹주 어네스트 마르셀에게 도전하기까지 12연승(11KO)을 달린다.

1974년 2월 16일, 아르게요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파나마의 기교파 에네스트 마르셀, 그는 일본의 시바타 구니아키에게 도전하여 홈 텃세에 밀려 무승부로 왕좌 탈취에 실패한 후 9개월 뒤 안토니오 고메즈에게 15회 판정으로 꺾고 지존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챔피언은 39승(23KO) 2무 4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고 이에 맞선 아르게요는 31승(26KO) 3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나마에서 치러진 경기는 아르게요가 초반부터 챔피언의 페이스에 말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심판전원일치 판정으로 완패한다. 어쩌면 이 시합이 아르게요에게 약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후 대전을 보면 무조건 쫒아 다니지 않고 상대를 가두어 놓고 공격을 가하는 패턴으로 바뀐다.

스스로도 부끄러운 경기에 그는 깊은 자각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한다. 패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아르게요는 4연승(3KO)을 수확한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멕시코가 자랑하는 괴물 루벤 올리바레즈. 올리바레즈는 밴텀급의 황금시대를 이끈 원조괴물이었다. 브라질의 전설 에델 조프레의 뒤를 이어 밴텀급을 최고의 체급으로 칭송받을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데뷔 후 24연속 KO가도를 달리다 한 번의 판정승과 무승부를 기록한 후 또 다시 32연속 KO승으로 세인들을 놀라게 한 후 두 번에 걸쳐 통합 밴텀급 맹주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다 체급을 올려 WBA페더급 왕좌마저 탈취한 후 아르게요와 첫 번째 방어전이었다.

당시 올리바레즈는 78승(75KO) 1무 4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펀치력 하나만은 당대 최고였다.

도박사들은 올리바레즈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아르게요의 13회 KO승. 올리바레즈의 패배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승자 아르게요에겐 이 시합은 자신의 세계를 열어 가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 경기에 패한 괴물 올리바레즈는 한 차례 왕좌에 오른 후 졌다 이기기를 반복하다 팬들에게서 쓸쓸히 잊혀 져 간다.

왕좌에 오른 아르게요는 라이오넬 헤르난데스를 8회에 박살내고 1차 방어를 마치고 두 달 뒤 리고베르토 리아스코를 어린애 손목 비틀듯 가볍게 2회에 날려버리고 2차 방어를 마무리한다.

3차 방어 상대는 우리나라 염동균과도 대적한 바 있는 일본이 자랑하는 하드 펀치 로얄 고바야시의 도전을 받아들인다.

당시 로얄 고바야시는 18전승(16KO), 아르게요는 40승(33KO) 4패.

이 경기에서 아르게요는 인파이터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잘 보여준다. 끊임없이 전진하는 고바야시를 상대로 빠른 발을 이용, 좌우로 빠지면서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 연타, 간헐적인 어퍼 컷 그리고 결정타는 바디블로우 공격이었다.

고바야시에겐 5회가 한계였다. 이 경기에서 그는 2개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었다. 3차 방어의 고개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했다.

장기집권의 기초를 마련한 아르게요는 1976년 6월 19일 살바도르 토레스를 3회에 요절내고 4차 방어의 벽을 넘는다.

4차 방어전을 치른 후 1978년 1월 28일, 페더급을 뒤로 하고 한 체급 위의 WBC 슈퍼 페더급 챔피언 알프레도 에스칼레아에 도전하여 13회 KO로 침몰 시킨다.

이 후 아르게요는 25개월에 걸쳐 슈퍼페더급 8차 방어를 마친다. 그 중 7명의 도전자는 마지막 라운드 공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르게요의 공포정치에 자객들은 신음한다.

1981년 아르게요는 두 체급에 만족하지 않고 한 체급 위의 WBC 라이트급 챔피언 짐 와트 마저 15회 판정으로 제압하고 3체급 달성에 성공한다.

챔피언에 오르자마자 미국이 자랑하는 신예 레이 맨시니의 도전에 응한다.

맨시니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불꽃의 복서 故 김득구 선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김득구 선수의 사망으로 양대 복싱기구는 15라운드는 인간에게 무리가 있다고 판단, 12라운드로 변경한다.

1981년 가을이 깊어 가는 10월 3일, 양자는 사각의 링에서 맞붙는다. 당시 챔피언 알렉시스 아르게요는 67승(54KO) 5패, 레이 맨시니는 20전 전승(15KO).

백전노장 노련미와 젊음의 패기로 무장한 신예의 한판이었다.

아르게요가 후반에 KO승이 많은 이유는 그는 기본기가 잘 되어 있고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천천히 상대를 압박해 가는 슬로스타터 형 복서였다.

맨시니는 이 날, 생애에서 가장 많이 맞은 날로 기억 할 것이다. 14회 종료공이 울리기 30초 전 아르게요의 전광석화 같은 연타가 터진다. 맨시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14회 아르게요의 KO승.

맨시니를 격침하고 난 그 다음 해, 아르게요는 또 다시 자신의 야망을 불태운다.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4체급 도전을 준비한다.

상대는 신시네티의 폭풍 WBA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미국의 아론 프라이어였다.

1982년 11월 12일 마이애미. 당시 아르게요는 72승(58KO) 5패, 프라이어는 31전승(29KO)을 기록하고 있었다.

1회 공이 울리자마자 프라이어의 거센 압박에 고전한다. 14회 까지 버터 보지만 TKO로 패한다. 10개월 후 다시 도전하지만 10회 KO로 다시 패한다.(이 시합을 계기로 아르게요는 프라이어와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게 된다)

아르게요는 아론 프라이어에 두 차례 패한 후 조국 니카라과로 향한다. 당시 니카라과는 미국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과 집권 산디니스타와 끊임없는 내전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었다.

귀국 후 바로 콘트라 반군에 합세, 남미의 정글을 누비며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그는 끝없는 내전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링에 복귀하지만 이젠 전성기의 아르게요가 아니었다.

의미 없는 몇 차례 시합을 치른 후 그는 1995년 파란만장 했던 사각의 링을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 후 자신과 총부리를 겨누었던 집권 산디니스타당의 권유로 수도 마나과 시장에 출마 당선된다.

아직도 추측만 난무 할 뿐 그의 자살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항상 조국 니카라과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복싱영웅 아르게요는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가 전 국민의 애도 속에 그렇게 사라져 갔다.

알렉시스 아르게요 생애 통산 전적 85전 77승(62KO) 8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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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사스 아르게요의 장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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