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파괴자’ 카를로스 자라테

‘공포의 파괴자’ 카를로스 자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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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의 유구함을 자랑하는 밴텀급 역사상 이른바 ‘황금의 밴텀’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황금시대를 주도한 두 명의 전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멕시코가 낳은 두 괴물 ‘알폰소 자모라’ ‘카를로스 자라테’였다. 둘은 밴텀급의 천하를 양분하여 철권통치로 자신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무수한 자객들을 핍박하였다. 세인들은 그 시대를 일컬어 ‘위대한 Z-boys 시대’라 불렸다.

1951년 5월 23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인근 테피토에서 장차 밴텀급의 황금시대를 열어 갈 위대한 전사 중 일인인 카를로스 자라테가 태어난다.

대개가 그러하듯 자라테 역시 그 시대 멕시칸 출신 복서들의 공통점인 가난이라는 천형(天刑)을 갖고 태어난다. 전부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가난은 범죄라는 기형아를 양산한다.

자라테는 소년시절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였다. 들판에서 잡초처럼 자란 그는 뒷골목을 전전하며 싸움꾼으로 성장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연일과 다름없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자라테를 지나가던 한 사람이 유심히 지켜본다. 깡마른 체구에 엄청난 파워와 동물적인 전투기능을 가진 그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바탕 싸움판이 끝난 후 의문의 사나이는 조용히 자라테를 부른다. 자라테는 그를 보고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 그랬다. 의문의 사나이는 그 지역을 담당하는 경찰이었다. 경찰은 자라테에게 웃음 띤 얼굴로 조심스레 복싱을 권유한다. 그 순간부터 자라테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새로운 세상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열일곱이 되던 해 아마추어에 입문하여 33연승(30KO) 3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1970년 2월, 사라테가 열아홉이 되던 해 그토록 그리던 강호에 첫발을 내딛는다.

첫 재물 루이스 카스타네다를 시작으로 1973년 12월까지 23연승(23KO)을 달린다. 안토니오 카스타네다(9회 KO승)을 제외하곤 3회전을 버틴 살수(殺手)는 아무도 없었다. 한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다.

빅토르 라미레즈에게 자신의 오점이 되어 버린 10회 판정승을 거둔 후 다시 8연속 KO 행진을 계속한다. 그렇게 1974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강호에 입문한지 5년의 세월, 이제는 절세고수가 되어 버린 그에게 좀처럼 천하재패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자라테는 멕시코라는 우물 안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 미국으로 건너간다.

상품적 가치가 확인된 자라테는 복싱의 본 고장에서 1975년 3월 14일 조 쿠에바라를 3회에 날려버리고 캘리포니아 주(州) 밴텀급 타이틀을 손에 넣는다.

한마디로 파죽지세 그 자체였다. 신이 뻗힌 자라테는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5연승(5KO)을 쓸어 담는다.

한 자루 묵도(墨刀)로 천하를 주유(周遊)하던 그에게 마침내 천하재패의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동국인(同國人) 로돌포 마르티네스. 자라테의 절세신공이 두려워 다른 맹주들은 노골적으로 비무을 기피했지만 마르티네스는 흔쾌히 자신의 4차 방어 상대로 자라테를 지명했다. 챔피언은 라파엘 헤레라에게 첫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1년 뒤 재도전, 기어이 4회 종료 전 헤레라를 캔버스에 패대기치고 왕좌에 오른 강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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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제2의 도시 잉글우드 WBC 밴텀급 세계타이틀 매치, 당시 챔피언 마르티네스는 46전 43승(34KO) 1무 3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에 맞서는 도전자 자라테는 39연승(38KO)을 기록하고 있었다.

양자는 시종일관 난타전을 전개하다 9회 1분 51초, 마르티네스는 장렬하게 산화해 갔다. 마침내 자라테가 맹주에 등극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왕좌에 오른 후 자라테는 두 번의 논타이틀전에서 상대를 나란히 2회에 요절내고 1차 방어에서 58전에 빛나는 백전노장 폴 페레리를 12회에 때려눕히고 일본의 신성 와루인게 나카야마를 4회, 이어 페르난도 카바넬라 마저 3회에 날려버리고 3차 방어를 마친다.

한편 자신보다 1년 먼저 왕좌에 오른 WBA의 맹주 알폰소 자모라는 대한민국의 전설 홍수환을 꺾은 뒤 5차 방어를 마친 상태였다.

자모라는 단신에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얼굴을 한 반면 일단 링 위에 오르면 돌변하여 상대에게 무시무시한 헤머 주먹을 휘두르는 그를 가리켜 세인들은 ‘작은 포식자’라 불렸다.

한 하늘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 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세인들은 위대한 황금의 밴텀시대를 주도하는 초 절정 두 고수의 비무를 열망했다. 세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통합타이틀 매치가 아닌 10회 논타이틀전으로 성사되었다. 이는 멕시코 복싱협회의 결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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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4월 23일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당시 자모라는 29연승(29KO)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자라테는 45연승(44KO)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자 모두 전설답게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1회, 양웅은 서로의 강렬함을 알기에 탐색전을 전개한다. 그러다 관중 한명이 속옷차림으로 링 위에 난입하여 1분간 경기가 중단되는 해프닝이 있은 후 다시 맞붙은 양웅은 처음과 딴판으로 난타전을 전개하지만 유효타 없이 1회전을 마친다.

2회, 시작과 동시 자모라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좌우 훅을 휘두르며 자라테를 압박해 간다. 하지만 자라테는 무게 중심을 잘 잡고 레프트 잽으로 응수한다.

3회, 양웅은 링 중앙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인다. 후반 자라테의 레프트 더블이 자모라의 안면에 적중하자 뒤로 물러서는 자모라에게 통렬한 라이트를 꽂아 넣는다. 자모라가 첫 번째 다운을 허용한다. 이때부터 저울의 추는 확연하게 자라테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4회, 공이 울리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간 자라테가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고 맹공을 가한다. 자모라가 두 번째 다운을 허용한다. 자라테가 끝을 보겠다는 결연함으로 소나기처럼 몰아 부친다. 1분 11초, 자라테의 좌우 훅이 자모라의 안면에 작렬한다. 충격을 받고 쓰러진 자모라가 일어서지 못한다. 그렇게 세기의 대결은 막이 내린다. 종료 후 아들의 패배에 흥분한 자모라의 부친이 링 위에 난입하여 행패를 부리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백중세라는 세인들의 예상을 뒤 엎고 자라테의 일방적인 승리는 누가 최고수인지를 스스로가 증명하였다. 거친 자모라에 비해 밴텀급에서는 비교적 큰 키인 173센티미터 장신에서 뻗어 나오는 강력한 잽과 스트레이트, 탄탄한 기본기와 콤비블로우 게다가 상대의 급소를 찾아 빈틈없이 꽂아 넣는 연타와 견고한 밸런스, 또한 자모라가 갖추지 못한 냉정한 경기운영 능력까지 겸비한 자라테였기에 승리의 몫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기에 패한 자모라는 쉽게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무명의 호르헤 루한에게 타이틀을 잃고 ‘졌다 이기다’를 반복하다 1980년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천하의 지존반열에 오른 그해 10월과 12월에 다니로 바티스타를 6회에 요절내고 이어 후안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5회에 내동댕이치고 5차 방어를 마무리한다.

자라테는 무풍지대를 달리듯 거침없이 진군한다. 해가 바뀐 1978년 2월, 알베르토 데빌라를 8회에 박살내고 6차 방어를 마치고 두 달 뒤 4월 22일, 안드레스 헤르난데스를 자신의 데뷔 후 가장 긴 시간인 13회에 끝장내며 7차 방어의 벽을 넘는다. 이어 6월에 에밀리오 헤르난데스 마저 4회에 보내버리고 8차 방어를 끝낸다.

자라테는 이젠 자신의 체급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단언, 가슴속에 숨겨둔 야욕을 드러낸다. 상대는 한 체급위인 푸에르토리코의 전설 윌프레도 고메즈였다.

루디 곤잘레스를 논타이틀전에서 4회에 끝장내고 고메즈와의 빅 매치 준비를 마친다.

1978년 10월 28일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 후안, WBC 슈퍼밴텀급 세계타이틀 매치.

고메즈는 대한민국의 영웅 염동균에게서 타이틀을 쟁취한 후 5차 방어에 성공하고 6차 방어 상대로 자라테를 지목하였다.

당시 고메즈는 21승(21KO) 1무로 전승을 달리고 있었다. 이에 맞서는 자라테는 52연승(51KO)로 무적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합 당일 자라테에게 예기치 않는 사고가 발생한다. 아침부터 설사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물러 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양웅은 새로운 전설을 위해 링 중앙에서 맞붙는다. 그런데 평소 침착한 자라테 답지 않게 초반부터 거세게 고메즈를 밀어 붙인다. 설사병으로 인한 컨디션 조절 실패로 후반으로 갈수록 불리하다고 판단, 초반에 끝을 보겠다는 작전으로 나왔다.

우매한 작전이 화를 부른다. 4회부터 고메즈 쪽으로 승부의 방향이 기울더니 5회 기어이 사단이 난다. 무리하게 안으로 파고들다 고메즈의 전가의 보도인 카운트에 걸리고 만다. 5회가 시작되고 44초만의 일이었다. 자라테는 강호에 발 들인 후 처음으로 통한의 패배를 맞본다.

강호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한 판 이기도 했다.

자라테는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해 3월 존 맨자 카플롱고를 3회에 박살내고 9차 방어 관문을 통과한다.

다가오는 10차 방어 상대는 전직 자신의 스파링 상대였던 과달루페 핀토르, 서로가 너무나 잘 아는 상대인지라 자라테로선 쉽지 않는 상대였다.

15회까지 시종일관 난타전으로 전개하다 판정으로 시비를 가린 결과 도전자 핀토르에게 2:1 판정으로 왕좌를 탈취 당한다. 그렇게 강렬했던 ‘위대한 Z-boys’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후 자라테는 12연승(11KO)로 선전하며 권토중래를 노린다. 1987년 그가 36세가 되던 해 슈퍼 밴텀급 제프 페네치에게 도전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비무 도중 중단, 지금까지 채점 결과 4회 판정패로 고배를 마신다. 다음 해 2월 다니엘 사라고사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하지만 이번에는 10회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맹주 자라테에게 노을이 짙어 오고 있었다. 자라테는 1988년, 18년간 영광과 아픔을 함께한 사각의 캔버스를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카를로스 자라테’ 그는 3년간의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자모라와 더불어 황금의 밴텀시대를 구가한 위대한 제왕이었다. 강렬한 파워와 현란한 테크닉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맹렬함을 세인들은 그리워한다.

생애 통산 전적  70전 66승(63KO)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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