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안 본 놈이 이길 뻔 한 사연

남대문 안 본 놈이 이길 뻔 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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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시청 밑 신현읍사무소(현 고현동사무소) 인근에 언론인 출신이 운영하는 작은 치킨집이 하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별 볼일 없는 우리들로서는 1차 소주한잔 걸치고 2차로 습관처럼 들리곤 하던 아지트였다.

그날도 간단하게 소주 한 잔 걸치고 갈 사람은 가고 나머지 서너 명이 결승에 남아 생맥주 한잔 생각에 닭 집에 몸을 밀어 넣었다.

얼큰하게 취 한 우리들은 자신들이 무슨 지역문제 평론가라도 되는 양 거제시에 산적한 갖은 현안들에 대해 거품을 물고 떠벌리고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와 술에 취해 밤도 깊어 가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하고(그때는 금연 없는 해방구였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출입문 입구에 붙어 있는 자리에서 유독 쌘 고음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A조선소 복장을 한 두 사람이 격렬한 언쟁을 하고 있었다. 서로 반말을 하는 것으로 봐선 둘이 친구인 것이 분명했다. 한 사람은 약간 왜소한 체격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무슨 무술이라도 한 것처럼 건장했다. 

무슨 주제로 저렇게 언성을 높이면서 까지 자신들의 주장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지 그때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분위기로 봐선 호전적인 자세로 앉아 덩치가 큰 녀석이 공세를 취하고 마른 녀석은 수세에 몰려 방어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필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일행들이 떠버리는 개 풀 뜯어 먹는 토론 속으로 다시 입장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주인장이 다가와서 “형님, 군대 맹호부대 나왔지예.” 필자가 답하기를 “와, 맞는데 무슨 일이 있나.” 그러자 주인장 왈 “형님, 절마들 누가 진짜 맹호부대 출신인지 싸우고 있다 아입니까”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딱 들어보이 띵띵한 절마가 구란데 삐짝 골안 아가 몰리고 있다 아입니까. 

그래서 요게 맹호부대 중사 출신이 있으니까 델꼬 오께요 하고 왔다 아입니까. 형님이 한 번 가보이소.” 하며 내 옆자리로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선수교체인 셈이다. 참고로 주인장은 우리 거제 칠 백리 연안을 일본의 무력 침공을 대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어에 힘써 온 천하무적 해변대(海邊隊)출신이었다. 바꾸어 이야기 하면 동네 방위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필자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맹호부대에 대해서 다투고 있다면서요” 하면서 말을 꺼내자 뱁새눈을 한 마른 녀석이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내 줌과 동시 맥주 한 잔을 넉넉하게 따라준다. 맥주로 입술을 축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쏟아졌다. 이구동성 막무가내로 자신이 진정한 맹호부대 용사라고 핏대를 세워가며 주장했다. 마른 녀석은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분명 두 녀석은 객지 친구임에 분명했다. 고향 친구라면 병역사항에 대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뱉어내 길 2~3분이 지날 쯤 필자가 그들을 제지했다. 심판관은 공정해야 했다. 아울러 출신이 정확해야 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 눈을 빤히 쳐다보며 가만히 안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그리곤 빛바랜 신분증 모양으로 생긴 전역증 즉 병역수첩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 주자. 마른 녀석은 독수리가 병아리 채듯 가져간다. 앞면 사진과 필자를 번갈아보다 뒷면을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색이 바랬지만 선명하게 찍혀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 1989년 3월 31일 전역‵ 뚱뚱한 녀석도 짧은 목을 최대한 길게 뽑으며 빠르게 스캔해 나간다. 잠시 후 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역증을 돌려준다. 이로써 심판관의 출신성분은 확인된 셈이었다. 이제 공정한 판결만이 남아 있었다. 필자는 두 녀석에게 질문을 하면 번갈아 가면서 답변하게 했다. 1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뚱뚱한 녀석이 하고 2번 질문에 대한 답은 마른 녀석이 하는 식으로 같은 질문에 두 녀석이 답하지 못하게 했다. 왜나면 빼길 우려가 있어서였다.

두 녀석은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을 하며 필자를 째려보고 있었다. 맥주 한 잔을 원샷하며 “두 사람 다 포병여단에 근무 한 것은 맞지요” 하고 묻자 씩씩하게 “맞습니다.” 하고 군기가 바짝 들어 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오간 후 필자는 뚱뚱한 녀석에게 던졌다. 사단사령부 위치와 포병여단 위치를 묻자 녀석은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현리와 태봉골입니다.” 눈을 돌려 마른 녀석을 바라보며 “주특기는?” 녀석이 답변했다. “통신 310입니다.” 이어 “몇 대대인가?” 녀석이 답변한다. “5X대댑니다.” 뚱뚱한 녀석에게 “몇 대대이며 주특기는?” 녀석이 답한다. “8XX대대, 주특기 수송960입니다.” 이 후 몇 가지 더 질의했지만 두 녀석 모두 망설임 없이 정답을 맞춰 가고 있었다.(지금은 주특기 번호가 바뀌었다)

사실 필자는 뚱뚱한 녀석이 가짜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 자리에 했을 적에 녀석의 횡설수설에서 몇 가지 틀린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어떻게 맹호부대 출신이 아닌데도 해박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불순한 게임을 즐겨보기로 한 것 이었다.

잠시 뜸들인 필자는 뚱뚱한 녀석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8XX대대에 자동화 사격장이 있는가?” 녀석이 답한다. “없습니다.” 여기서 게임은 끝났다. 필자는 녀석에게 그곳에는 사단 자동화 사격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그곳이 고향인가?” 얼굴이 벌게진 녀석이 잠깐의 침묵을 건너 묵직하게 답한다. “고향은 아니구요 저는 방위 출신입니다. 새끼가 하도 잘난 척 해서 그랬습니다. 친한 친구가 거기 있어서 면회를 제대 때까지 스무 번도 더 가서 빠싹하게 압니다.” 하며 멋쩍어 하자 마른 녀석은 목소리를 돋우며 흥분했다. 

“와! 김중사님 아니였으면 지가 졌습니다. 남대문 안 본 놈이 이긴다는 말 진짜 실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곤 서로를 툭툭 치며 장난치다 필자가 일어서자 두 녀석도 일어서며 깍듯하게 인사하며 필자를 보냈다. 자리에 돌아와 일행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박장대소하며 즐겼다. 그렇게 그날의 술자리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밤과 더불어 아름답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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