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천재’ 윌프레도 베니테스

‘게으른 천재’ 윌프레도 베니테스

신(神)은 베니테스에게 무공을 연마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체조건인 천무지체(天武之體)와 더불어 유연성, 민첩성, 무공습득능력, 임기응변 그리고 동물적인 반사신경까지 하사한다.

신의 은총을 입은 윌프레도 베니테스는 1958년 9월 12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복서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삼형제중 막내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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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천재 윌프레드 베니테스

그의 아버지 그레고리오 베니테스는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인었다. 베니테스가 소년으로 성장할 쯤 그의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게 된다.

소년으로 성장한 삼형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나란히 복싱에 입문하게 된다. 가장 늦게 입문한 베니테스는 형들과는 다른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듯이 기쁨에 들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게으름뱅이였다. 스스로 자신은 복싱의 바이블(교과서)이라고 떠벌이고 다녔고 한 술 더 떠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믿고 언제나 연습을 등한시했다. 그런 막내아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골치를 썩고 있었다. 살살 구슬려서 체육관에 끌고 와서 연습을 시켜 놓고 잠시 한눈판 사이 도망치고 없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요리저리 빠져 나갔다. 그렇게 매일 숨바꼭질은 반복되고 있었다. 신은 베니테스에게 전부를 다주지 않았다.

1973년 11월 22일 베니테스가 열다섯이 되던 해,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서 히람 산티아고를 1회에 박살내며 어린나이에 험난한 강호에 첫발을 내딛는다. 믿기 어렵지만 시합 전 그가 소화한 훈련은 아버지와 맨손으로 주고받은 스파링이 전부였다.

거칠 것이 없는 천재 베니테스는 한 자루 묵검으로 강호를 유유자적 유람하듯이 떠돌며 그에 차가운 칼날 아래 25명의 고수가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강호에 입문한지 불과 2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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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드 베니테스 전성기의 모습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검객의 칼날은 이미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상대는 콜롬비아의 영웅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였다.

세르반테스는 라이트 웰터급을 열 차례나 방어한 절대 군주였다. 1971년 120전에 빛나는 노장 리콜리노 로체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15회 판정으로 석패한 뒤 10개월 후 새로운 맹주 알폰소 프레저를 10회에 요절내고 왕좌에 오른 뒤 열 명의 도전자를 북망산천으로 보냈다. 그 중에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이창길도 그의 칼날아래 사라져갔다.

1976년 3월 6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WBA세계라이트웰터급 타이틀매치.

이때까지 세르반테스는 86전 74승(29KO) 3무 9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에 맞선 베니테스는 25전승 20KO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베니테스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이었다.

비무장(比武場)에 오른 양자는 자신이 가진 절세무공을 선보이며 15회 끝을 알리는 공이 울릴 때까지 승부를 결정짓지 못해 결국 판정으로 종지부를 찍어야했다.

결과는 2명의 부심은 148:144, 147:142로 베니테즈 우세 또 다른 부심은 145:147로 세르반데스의 우세를 주었지만 2:1로 베니테스가 새로운 맹주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 9개월, 이 기록은 복싱 양대 기구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최연소 기록이다.

맹주에 오른 베니테스는 1976년 5월 31일 에밀리아노 빌라를 15회에 판정으로 제압하고 1차 방어에 성공하고 그해 10월 토니 페트로넬리를 3회에 주저앉히고 2차 방어의 벽을 넘는다.

1977년 베니테스는 4차례의 논타이틀전을 거쳐 그해 8월 3일 레이 차베스 게레로를 3차 방어에 만나 고전 끝에 15회 종료직전 TKO로 제압하고 3차 방어를 마친다.

타고난 게으름은 연습부족을 부르고 결국 체중조절 어려움은 컨디션 난조로 이어져 고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이래 아직도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후 체중 감량고에 시달리는 베니테스는 라이트 웰터급 왕좌를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한 체급 위인 웰터급으로 전향한다.

베니테스가 체급을 바꾼 이유는 연습부족으로 인한 감량고에 대한 고통이 있었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이 맹주로 있는 라이트 웰터급은 절정고수 부재로 인해 매력 있는 체급은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면 돈이 안 되는 체급인 셈이다. 하지만 한 체급 위의 웰터급은 세인들이 열광하게 만드는 절정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당시 무림을 이끌어 가는 전설의 4인방 중 절정고수 3명이 웰터급에 몰려있었다. 그들이 바로 슈거레이 레너드, 토머스 헌즈, 로베르토 두란 그리고 또 하나의 절세고수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가 있었다.

만약 그들과의 비무가 성사된다면 부와 명예를 한손에 움켜질 수 있었다.

여하튼 베니테스는 전향 후 신이 뻗친 듯 한결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4연승을 달린다. 이제 맹주의 자리에 올라갈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기회는 베니테스가 예상한 것 보다 빠르게 찾아온다. 상대는 멕시코의 강타자 카를로스 팔로미노. 자신보다 아홉살이 많은 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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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팔로미노

 

1979년 1월 14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WBC 세계웰터급 타이틀매치.

당시 팔로미노는 31전 27승(15KO) 3무 1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에 맞선 베니테스는 36전승(24KO) 1무승부를 기록하고 있었다.

양웅(兩雄)은 1회 시작부터 15회 마지막 공이 울릴 때까지 시종일관 난타전으로 세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비무가 끝난 후 양자는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의 선전을 치하했다.

곧 결과가 발표되었다. 2명의 부심은 146:143, 146:142 베니테스 우세 또 다른 1명의 부심은 142:145로 팔로미노 우세, 그렇게 천재 베니테스가 2체급 석권과 동시 황금의 체급인 웰터급의 맹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왕좌에 오른 후 베니테스는 불과 2개월 후 헤롤드 웨스튼을 판정으로 제압하고 1차 방어를 완료하고 다가 올 세기의 대결 ‘신이 내린 인간 최고의 복서’ 슈거레이 레너드와의 대전을 앞두고 있었다.

레너드는 수려한 외모와 절정의 무공을 겸비 아마추어 시절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프로로 전향하여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화려한 그의 절세무공에 매료되어 그가 가는 곳 마다 흥행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복싱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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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와의 대전

1979년 11월 30일 미국 라스베가스 시저스팰리스 호텔 특설 링, 도전자 레너드는 당시 파죽의 25연승(13KO)을 기록하고 있었다.

신이 내린 두 천재는 사각의 캔버스에서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되는 가운데 왜 그들이 천재이고 최고의 전사인지 세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다.

1회부터 자신들이 가진 절세무공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들에게 클린치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 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연출한다.

14회가 끝나고 베니테스는 포인트면에서 자신의 열세를 직감한다. 경기 후 밝혀졌지만 14회까지 130:137, 134:136, 133:137로 만장일치로 점수에서 한참 밀리고 있었다.

운명의 15회, 두 전사는 링 중앙에서 맞붙는다. 양자는 1초도 쉬지 않고 신공을 퍼 붙는다. 그들에게 방어는 없고 오로지 공격만이 있을 뿐이었다.

라운드 종반 2분이 지나 레너드의 좌우연타가 베니테스의 안면에 강렬하게 내려꽂힌다. 베니테스가 주저앉는다. 그의 얼굴에는 선명하게 비수의 자국이 남아 선혈이 낭자하다. 주심이 카운트를 샌다. 2분 54초, 종료 6초를 남기고 모든 것이 끝이 난다. 베니테스는 생애 최초로 패배의 쓰라림을 맞본다.

그런데 훗날 밝혀졌지만 이날 비무를 위해 베니테스가 연습한 기간은 단 일주일로 알려지면서 세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것도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수련했다하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대회전(大會戰)은 베니테스의 패배로 막이 내린다. 훗날 그날의 비무는 강호에 위대한 전사들의 혈투로 아직도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레너드에게 맹주의 자리를 내어 주고 베니테스는 그 다음해 1980년 3월 조니 터너를 9회에 침몰시키고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2차례의 시합에서 2연승을 거두며 자신은 아직 건재함을 만 천하에 알린다.

베니테스에게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한체급 위인 라이트미들급 챔피언 과테말라 안티구아 출신의 모리스 호프였다.

모리스 호프는 33전 30승(24KO) 1무 2패의 강타자였지만 결국 12회가 한계였다 베니테스는 그를 코너로 몰아 강력한 라이트 한방으로 그를 패대기친다.

프로복싱 역사상 7번째로 3체급 제패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그것도 22세 4개월의 최연소 3체급 달성자였다.

3체급을 석권한 후 베니테스는 1차 방어를 자국 푸에르토리코의 22연승(18KO)에 빛나는 영건 카를로스 산토스를 15회 판정으로 돌려 세우고 2차 방어를 준비한다.

2차 방어 상대는 4대천황 중 가장 강력한 펀치의 소유자 파나마의 영웅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이었다.

맹주에 오르고 2개월 후에 벌어진 비무였지만 베니테스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베니테스는 76전에 빛나는 강력한 도전자 두란을 상대로 한수 위의 기량을 뽐내며 3:0 만장일치 판정으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2차 방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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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과의 대전

베니테스에게 또 다시 절세고수가 도전장을 내민다. 상대는 ‘저격수’ 토머스 헌즈였다. 그 역시 4대천황 중 1인이었다. 헌즈는 당시 멕시코의 괴물 ‘조 브레이크(턱 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를 단 5분 만에 제압하고 왕좌에 등극한 뒤 레너드와의 웰터급 통합타이틀전에서 패한다. 헌즈에게는 레너드에게 진 것이 유일한 패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양자 모두 프로 생애 첫 패배가 공교롭게도 레너드 한 선수에게 패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1982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베니테스는 헌즈에게 만장일치 판정패로 라이트미들급 왕좌를 탈취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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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 토머스 헌즈

 

그렇게 위대한 천재복서 윌프레도 베니테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헌즈에게 패한 그 다음해 은둔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그였기에 미들급, 크루저급, 라이트헤비급을 전전해보지만 게으름으로 한층 더 비대해진 베니테스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결국 지다 이기기를 반복하다 1990년 스코트 파파소도라에게 패한 후 은퇴를 선언한다. 앳된 소년으로 링에 올라 17년간 강호를 종횡무진하다 그렇게 사라져갔다.

베니테스에게 신이 성실함마저 주었다면 그는 4대천황을 능가하는 초 절정 고수가 되어 천하를 호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왕국을 건설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이루어낸 업적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지만...

현재 베니테스는 자신이 벌어 놓은 돈을 흥청망청 다 날리고 복싱협회에서 주는 연금 월200달러로 생활하고 있으며 비대해진 몸 때문에 타인의 도움 없이 거동이 불편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불우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생애 통산 전적  62전 53승(31KO) 1무 8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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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베니테스와 그의 어머니

 

거제뉴스와이드 (geojenewswi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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