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전사에서 살인자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복서... 에드윈 발레로

무적의 전사에서 살인자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복서... 에드윈 발레로

프로 통산전적 27연승 27KO. 역대 세계챔피언 중 사상 유일하게 퍼펙트 레코드 보유자, 그리고 프로 데뷔로부터 18KO 연속 ‘1회 셧아웃’ 기록은 아직도 신성불가침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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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전승 27KO 퍼펙트의 사나이 에드윈 발레로

 

경천동지할 발자취를 남기고 28살 젊은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위대한 전사 에드윈 발레로가 1981년 12월 3일 남미의 작은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다.

그가 12살 되던 해, 소년 발레로는 복싱에 입문한다. 동시에 이때부터 코카인과 술에도 입을 댄다.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결국 학교를 중퇴하는 결과를 낳는다.

발레로는 이젠 남은 한길, 복싱 외에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어린 나이부터 아마에 발을 들인 그는 2001년까지 86승(57KO) 6패의 빛나는 아마추어 전적을 남긴다.

2001년 2월 5일, 발레로 생애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일이 발생한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그는 머리 골절로 수술을 받는다. 이 사고로 그는 생을 마감하는 동안 회한으로 남는다.

그다음 해, 발레로는 몸이 회복되자 곧바로 프로라는 험난한 강호에 발을 들인다. 한마디로 ‘무적’ 그 자체였다. 데뷔 후 12전을 싸우는 동안 단 한 명도 3분을 버티는 자객이 없었다. 그의 칼춤은 그렇게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발레로가 상품 가치를 증명하자 ‘골든보이 프로모션’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다. 그와 계약과 동시 HBO 방송사와 발레로의 전 시합 방송을 결정하고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2004년 1월, 시합을 앞두고 ‘뉴욕주 커미션’의 MRI 검사에서 뇌출혈이 발견되어 라이센스 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 결과 발레로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시합에 나설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물러설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주 있는 어느 병원에서 링 위에 올라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아 그 진단 결과를 ‘뉴욕주 커미션’에 제출해 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복싱은 발레로 인생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복싱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시합을 할 수 없었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비무는 가능했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데이겐 프로모션’ 혼다 아키히코 회장에 눈에 들어 계약과 동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1년 6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혼다 회장은 발레로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판단, 아르헨티나의 ‘에르난 발렌제라’와 재기전을 치른다. 각고의 노력으로 몸을 만든 결과 발렌제라는 1라운드를 버티지 못한다. 그때가 2005년 5월 12일의 일이었다. 그렇게 발레로는 긴 공백을 깨고 강호로 복귀한다.

이제 날개를 단 그는 오로지 천하 제일인을 목표로 무공 연마에 전념할 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그의 강력함에 그 누구도 비무를 청하는 자가 없었다. 난감했다. 이에 혼다 회장은 묘수를 들고나온다. 발레로와 싸워 1라운드를 버티면 대전료 외에 추가로 100만 엔을 제시한다. 그 결과 ‘한도 히로’가 겁 없이 비무장에 올랐지만 결과는 세인들의 예상대로 1라운드를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한도는 패전과 함께 100만 엔도 허공에 날려 보냈다.

2006년 2월 25일, 발레로는 파나마의 와이벨 가르시아를 상대로 WBA 라틴 아메리카 슈퍼 페더급 왕자에 도전하여 1회에 날려버리고 벨트를 손에 넣는다. 전무후무한 18연속 1회 KO승의 기록과 함께였다.

1개월 후, 발레로는 고베에서 열린 논 타이틀전에서 2회 KO승을 거두지만 1라운드 연속 KO승은 18에서 멈춘다. 하지만 연속 셧아웃은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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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후예 발레로, 데마르코와의 대전

 

2006년 8월 5일, 발레로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상대는 파나마의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 ‘빈센데 모스게라’였다. 파나마시티에서 치러진 대전은 만만치 않았다. 초반부터 고전한 발레로는 생애 처음 다운을 당한다. 하지만 뒷심을 발휘한 그는 기어이 챔피언을 패대기친다. 10회 2분 0초 때의 일이었다.

맹주에 오른 그는 진군한다. 2007년 정월 3일, 일본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맥시코의 멕시코의 미첼 로사다를 불려 들여 1회 1분 12초‘만에 박살 내고 1차 방어전을 마친다.

그해 5월 3일, 발레로는 같은 장소에서 2차 방어전을 치른다. 지명방어전이었지만 동급 1위가 발레로의 강력함에 두려움에 떨며 WBC 지명 도전을 핑계로 시간을 계속 끌고 있었다. 그래서 동급 2위 일본의 ’모토노조미 노부토‘와 지명방어전을 치른다. 도전자는 8회가 한계였다. 그렇게 2차 방어의 벽을 넘어선다.

2007년 12월 15일, 발레로는 멕시코 칸쿤에서 동급 13위 사이드 사바레타와 3차 방어전을 치러 3회 1분 18초 만에 박살 낸다.

당시 슈퍼 페더급에는 불세출의 전사들이 즐비했다. 이름만 들어도 압박감이 느껴질 매니 파퀴아오, 환 마누엘 마르가스, 마르코 안토니오 발레라 이들 모두 빅매치를 고대하고 있었다. 발레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8년 2월 중순, 발레로는 미국 ’텍사스주 커미션‘의 건강진단을 통과함과 동시 라이센스 취득을 하게 된다. 이로써 미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2008년 6월 12일, 발레로는 일본무도관에서 동급 7위 시마타와 4차 방어전에서 7회 1분 55만에 날려버린다. 이 시합은 그가 일본에서의 라스트 매치였다. 그 후 라이트급으로 전향하기 위해 2008년 9월 4일 WBA 슈퍼페더급 왕관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혼다 회장의 계약 해지 수락으로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돌아간다.

다음 해 발레로는 밥 에럽이 연결한 ’탑 랭크사‘와 계약하고 미국으로 거점을 옮긴다.

2009년 4월 4일, 한 체급 올린 발레로는 콜롬비아의 안토니오 비탈리아와 WBC 세계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2회 49초 만에 날려버리고 2체급 석권의 위업을 달성한다. 약 6년 만에 미국에서 치러진 시합이기도 했다.

그해 9월 4일, 베네수엘라에서 발레로는 모친과 여동생을 폭행, 가정폭력범으로 체포된다. 하지만 발레로는 체포된 사실을 부정한다. 또 텍사스주에서 음주운전으로도 체포된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발레로는 다른 주에서도 복싱 라이센스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밥 에럽의 일에 찬물을 끼얹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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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로 사후 그를 일대를 그린 영화 엘 잉카에 등장한 배우들

 

2009년 11월 14일, 라스베가스 MGM그랜드가든에서 열린 매니 파퀴아오와 미겔 고토전 세미 파이널로 움베르토 소토와의 대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국의 체류비자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해 12월 19일, 라이트급 맹주에 오른 뒤 첫 방어전을 모국 베네수엘라에서 동급 14위 멕시코의 핵토르 베라스게스와 대전해 6회 종료 직전 레프리 스톱승으로 장식한다.

2010년 2월 6일, 발레로는 적지 멕시코 몬테레 아리나에서 잠정왕좌 안토니오 데마르코와의 왕좌 통합전에서 9회에 패대기친다. 2차 방어전이기도 했다. 이로써 데뷔부터 27연속 KO승. 역대 11위의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합이 그의 생애 마지막 비무였다.

데마르코와의 통합전 후 슈퍼 라이트급으로 전향을 희망하며 벨트를 반납했지만 WBC측은 2월 6일부로 라이트급 휴양왕좌로 인정한다.

발레로에게 어둠이 짙어 오고 있었다. 그것은 술과 마약 그리고 폭력이었다. 2014년 4월 18일, 베네수엘라 카라보보주 발렌시아에 머물던 호텔에서 방을 나온 그는 경비원에게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한 달 전 그의 폭행으로 그의 처는 장 파열과 쇄골뼈 골절상을 입어 병원에 후송된 적이 있어 사고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은 자신은 폭행사실을 부인했다.

다음 날 4월 19일, 경찰서 내 독방에 감금되어 있던 발레로는 목을 매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그렇게 발레로는 짧지만 강력한 전사로서의 길도 끝난다. 

발레로가 만약 알콜, 코카인 중독을 인정하고 치료에 전념했다면 자신의 인생 그리고 전사로서도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과 불법 약물 투여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전사로서의 삶이 존중 받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생애통산전적 아마 92전 86승(57KO) 6패, 프로 27전승 27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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