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머니

[기고] 어머니

김갑상 전 거제시민뉴스대표

제 어머니 이름은 순입니다.

어릴 적 술을 끔찍이도 좋아 했던 제 큰 외삼촌은 술이 거나하게 오르면 흥에 취해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 그러니까 제 어머니를 보러 죽림 둑길을 따라 노래를 부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순아, 순아! 고래고래 마을이 떠나 갈 정도로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를 찾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한글도 모르는 코흘리개는 제 어머니 이름이 순일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초등학교 입학 후 한참이 지난 다음 어머니 이름이 기순(琪順)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호적상 1927년생입니다. 제 외가는 거제읍냅니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 독녀인 제 어머니는 외삼촌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내다 열여섯이 되던 해, 종군위안부 강제 모집을 피해 제 아버지께 시집왔습니다.

차남인 아버지는 외항선을 타는 뱃사람이었습니다. 딱히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께 시집 와서 8남 1녀를 낳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많은 자식들 밥 세끼 챙기기 위해 평생을 허리 한번 제대로 편적 없습니다. 손은 터고 발뒤꿈치에서는 이불을 덮을 때 마다 ‘서걱 서걱’ 소리가 났습니다. 오늘은 밭일, 내일은 논일, 모레는 뱃일 끝없는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소아마비였던 제 큰 형님이 사고로 죽던 날 어머니의 비통해 하는 모습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자식을 가슴에 묻고 들로 바다로 일을 찾아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느 고등학교를 나온 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세운 학교에 다닌다 하니 혹 친척들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했다 합니다.

1989년 저가 제대하고 집에 와서 인사를 드리니 어머니는 “군대 있어야 할 니가 집에는 우짠 일이고?” 해서 “제대 했다.” 하니 “볼세 제대가.” 사실 저는 61개월 복무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 7명 중 다섯은 현역, 둘은 당시로는 방위로 보냈습니다.

1997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일을 손에 대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장성했고 손자, 증손자까지 봤습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는 무릎 관절도 좋지 않고 심장병까지 있어 여러 병원을 전전 했습니다. 매번 병원을 찾아가면 항상 짐을 챙겨 놓으시고 “아범아, 느거 아버지 집에 데려다 주라. 죽어도 느거 아부지 집에서 죽을끼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로는 제 부모님은 소문난 잉꼬부부 였답니다. 차멀미를 많이 하신 어머니 덕에 어딜 가던 손을 잡고 걸어 다녔다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4일 전 백병원을 퇴원 하시면서 “아범아, 니 누나 좀 오라캐라. 보고 싶다.” 그리곤 누나와 함께 삼일을 보낸 후 다음 날 새벽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아범아 나 죽거든 화장하지 말고, 꽃상여 태워 주고, 느거 아버지 옆에 묻어 주라.”

살아생전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는 어머니가 같이 가다 길바닥에 주저 않을 때 마다 성질내고 하루 수 십 번씩 같은 전화 계속하는 어머닐 나무라고 밤마다 돌아가신지 20년이 넘은 뒷집 할매가 마루에 앉아 손짓해서 너무 무서우니 가지 말고 자고 가라는 걸 바쁘다는 핑계로 뿌리치고 나온 제가 싫습니다.

전엔 한 번씩 꿈속에서 뵈었는데 요즘엔 잘 보이시질 않습니다. 그 많은 자식들 치매 판정 받으시고도 생일도 다 외우시는 분이셨는데 절 잊지는 않으셨지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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