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혐오스러운 일제 잔재를 걷어 주오
지난 주말 인근 지심도를 탐방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족히 둘러볼 만한 작은 섬이지만, 수백 살도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햇빛 한 줌도 못들만큼 촘촘한 동백 군락, 거기에 푸른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까지 어우러져 여느 명승지 못잖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확 트인 해안에 이르자 정체 모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안내판을 보니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포진지와 탄약고였고, 반대쪽 해안엔 탐조등 진지까지 버젓이 남아있었다. 백 년이 다됐건만 단단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것들을 목격 후 혐오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옥포해전 승리의 정기서린 이 바다 위에 일제 잔재가 웬 말이며, 만약 이순신 제독께서 이 광경을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
일제가 이 땅에서 퇴각한 지 75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잔재는 곳곳에 남아있다. 그것도 후대에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 하에 말끔히 정비 후, 근대문화재니 국가등록문화재니 미명까지 지어주며 용도변경, 또는 관광코스로 개발한 곳도 부지기수이다. 과연 일제 잔재도 문화재라 칭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할 때도 같은 논리로 반대한 이가 많았다. 그러나 일제의 표징을 제거한 그 자리엔 복원된 경복궁 전각들과 광화문이 제 자리를 찾았고, 그 일대는 명실공히 우리의 국격과 미래의 번영을 상징하는 명소로 탈바꿈하였다. 세계인들이 예찬하며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아직도 그 흉물 덩이가 남아있다면 지금처럼 활기찬 서울의 정경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혹자는 식민의 역사도 역사이며, 그 잔재를 보전하여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엔, 이러한 잔재는 자칫 우리 국민에겐 치욕과 열등감만 심어주고, 침략자에겐 오만과 재침야욕을 달구는 그릇된 이정표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일찍이 그들은 광개토대왕 비문과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하여 한반도 침략의 당위론으로 삼았던 자들이며, 더욱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선대의 만행을 미화하고, 평화헌법을 고쳐 다시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는 현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건대, 우려는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저들이 간직한 침략의 추억을 뭉개버리고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일제 잔재를 남김없이 치우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잔재는 적산가옥을 비롯하여 관공서, 군대 막사, 은행 등 다양하게 분포하며, 대부분 악랄한 지배와 수탈의 본거지들이다. 이것들을 당장 걷어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며, 이미 언급했듯 반대론과 소요예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벽에 막혀 주춤대다 보면 광복 100주년, 200주년이 되어도 후손들은 여전히 치욕의 잔재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반면, 침략자의 후손들에겐 조상의 자랑스러운 유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듯 이 땅의 영유권을 주장할 증거 사료로 내밀지는 않을까? 이것이 필자의 지나친 논리 비약이길 바라며, 임진왜란 첫 승전고를 울린 옥포만을 바라보며 단상에 빠져 보았다. (대우조선해양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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