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트럼프 암살 미수, 정치의 본원(本源)은?
또 한 번 정치인을 향한 총성이 울렸다.
2024년 7월, 유세를 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연설 도중 날아온 총알에 의해 오른쪽 귀 윗부분이 관통되는 부상을 입었다.
다음날 조간신문 1면은 온통 트럼프로 장식돼 있었고, 공화당 내부에선 이미 선거가 끝났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위기감이 고조된 민주당은 후보 교체론이 더 강하게 분출되었고, 결국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이번 사건이 불러온 후폭풍은 미국 역사에 남게 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린드 B. 존슨 대통령 이후 56년 만이다.
미국의 前 대통령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은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정치인을 겨냥한 총구의 피해자는 결국 일반인에게서 발생했고 임계점에 이른 미국 사회 양극단의 정치적 분열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들어 정치인을 타깃으로 삼은 테러 행위가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선 올해에만 두 차례 정치인 피습이 발생했고, 2년 전 일본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중 피격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잇따른 정치인 테러에 대해 양극단으로 치우친 최근의 정치 지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오직 내가 속한 진영만이 옳다’는 사고방식이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되면서 정치인 테러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총격 이후 트럼프 진영의 후보 수락 연설문 기치가 ‘통합’으로 재구성된 것과, 이번 테러가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악마화하고 증오심을 부추긴 데서 기인했다며, 바이든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그들 역시 정치인 테러를 비슷한 맥락에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테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테러 앞에 움츠러들고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 회복을 위해서는 상호존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정치판에서 상호존중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기울어진 정치운동장은 거야(巨野) 국면 속에서 오로지 의석 수로 밀어붙이는 제1야당과 대통령 거부권에만 의존하는 여당의 대립이 지난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정부·여당과 조율 없는 빈번한 직권상정과 운영위·법사위 독식까지는 양반으로 보일 지경, 사상 초유의 탄핵 청문회 개최는 야당이 행정부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드러낸다. 물론 야당의 사법리스크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지 않은 정부·여당 역시 그들을 존중했냐는 질문에 떳떳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양당의 대표 선출 과정 역시 상호존중이 크게 후퇴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 국민의힘은 왜 4년 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당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나 분석보다 ‘읽씹’으로 시작해서 ‘패스트트랙’으로 끝나버렸다. ‘당을 이끌어나갈 적임자 논리’로 당원들을 설득하기보다 ‘저 사람은 그러므로 대표가 되어선 안 된다’로 점철된 선거였다는 얘기다.
상호존중이 아닌 상호비방에 당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했고 지난 선거보다 투표율은 더 낮아졌다. 민주당도 크게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선거였다. 이미 민주당에선 감히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은 해고(?) 됐기 때문이다.
두 정당의 선거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상호존중 없는 저질 정치가 정치 무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팬덤을 위시한 강성 지지자들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상호존중 결여는 점차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여주게 된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이재명 대표가 피습 당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이 대표의 빠른 병원 이송과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 역시 이 대표의 빠른 회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지지자들을 향해 제가 피습당한 것처럼 생각해달라며 2차 가해 가능성을 사전에 원천 차단했다. 또한 같은 달 배현진 의원이 피습을 당하자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상처를 언급하며 배 의원의 쾌유를 빌었고 다른 야당 의원들도 배 의원의 쾌차와 함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비록 양극단에 서 있을지언정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과 비상식적 행위에 여·야가 서로를 걱정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에 합심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최소한의 선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 우리는 이 대목에서 ‘상호존중의 정치 복원’이라는 작은 기대를 하게 된다.
극단의 갈등에서 불거지는 정치 테러는 초강대국 美 대선 국면의 ‘총성’으로까지 번졌다. 전 세계가 포용과 존중의 정치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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