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두 얼굴의 섬, 거제!
바다와 산과 포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같이 아름다운 섬, 산해진미와 훈훈한 인심이 넘치는 고장, 거기다 세계 굴지의 조선소를 두 개나 품고 있는 조선산업의 메카! 대다수 국민은 거제도를 이런 표면적인 모습으로만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6⋅25사변을 겪은 어르신들은 포로수용소에 대한 인상이 더 강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수려한 자태 저편으로 4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기 거제 앞바다가 조선과 왜의 수군이 벌인 격전의 현장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도 불과 10여km 거리를 두고 승전과 패전의 바다가 공존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역사에는 문외한이지만, 소싯적 배운 기억과 일천한 지식으로 거제도에 얽힌 그날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통한의 임진년 그날, 15만여 병력과 1,0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20일 만에 한양까지 진출하였다. 지상군이 이렇게 파죽지세로 진출한 반면, 수군은 부산 앞바다에 정체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수군이 남해 일대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옥포해전은 개전초기 우리 수군의 위용을 왜군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임진왜란 내내 바다에서의 승기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승전인 옥포해전은 1592년 5월 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 제독의 전라⋅경상 연합함대가 거제도 옥포만에서 왜군 함대를 격파한 해전으로써 임란 중 조선군의 첫 승리이자 이순신 제독께서 이룬 전승 신화의 서막이었다. 당시 왜(倭) 수군은 지상군과의 수륙병진작전을 위해 서해 진출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해 거제-통영-사천을 연하는 수로 확보는 필수과제였다. 그러나 이 지역 사령관인 경상우수사 원균은 일찌감치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해전을 포기한 채 지휘권마저 전라좌수사 이순신 제독에게 의탁하는 처지였다. 이순신 제독께서는 자신의 작전지역이 아님에도 흔쾌히 원균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전투에 앞서 부하들에게 “勿令妄動靜重如山”(경거망동하지 말고 움직임을 태산같이 하라)이라 호령하며, 침착하고 단호한 지휘로 옥포만에 주둔한 왜군을 격파함으로써, 남해 일대 제해권을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지금 그 승리의 바다에 쟁쟁하던 일본의 조선소들을 제압하고 세계 최고로 등극한 대우조선소가 우뚝 서 있으니,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 패전인 칠천량 해전은 1597년 7월 14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함대가 왜군 함대와 거제도에 딸린 칠천도 앞바다에서 벌인 해전으로써 임란을 통틀어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해전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당쟁이나 일삼던 조정에 이순신을 모함한 대가(?)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원균은 장수다운 지략과 사리 판단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무능의 극치를 칠천량 해전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순신 제독으로부터 실전으로 단련된 강력한 함대를 인수하였건만 이 해전에서 전투 한 번 제대로 못치르고 원균 자신을 포함한 1만여 수군이 전사하고 160여 척의 함선이 격침되는 대패를 했으니 말이다. 그날 우리 수군이 흘린 피가 얼마나 바다를 붉게 물들였으면, 칠천도에 딸린 작은 섬 이름을 혈도(血島)라 불렀을까! 패전의 결과 조선 수군은 궤멸되고, 제해권이 왜(倭) 수군에게 넘어감으로써 지상으로는 진주, 남원까지 침탈당하고 호남의 곡창지대도 빼앗기게 되었으니 그 분통함이 뼈에 사무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제독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계기가 된 것이랄까?
우리는 거제도의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얼굴 뒤로 한때 왜적의 야만적인 발길에 짓밟힌 슬픈 얼굴이 숨겨져 있음을, 또한 가장을 잃은 아낙네와 아이들의 통곡이 묻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진왜란을 두고 역사가와 전략가들이 이미 수많은 평가와 교훈을 제시하였지만, 필자는 주변국을 능가하는 강력한 국방력 건설만이 치욕적인 역사의 반복을 막는 길이라고 본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를 침략했던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한 채 외연 확장을 노리는데, 우리 스스로 평화에 도취되어 경계심과 무장을 해제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평화로운 때야말로 가장 전쟁에 대비해야 할 때임을 마음에 새긴 채 말이다. 그것이 거제도 저 푸른 바다에 잠든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대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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