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고>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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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16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한 참혹한 사회적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5~16세기 영국에서는 양모 가격이 폭등하자 지주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농경지를 양을 키우는 목초지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던 공유지와 농민들의 토지에는 울타리가 쳐졌고,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은 도시로 내몰려 값싼 노동력이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인클로저 운동을 배웠습니다.

경남 거제에서는 남부관광단지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골프장 개발 사업입니다. 개발 예정지는 숲이 울창한 식생보전등급 2등급 지역이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해 50여 종의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이 41%를 차지하는 곳입니다. 원칙적으로 개발이 어려운 지역입니다.

그런데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옮기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았습니다. 과연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요

자연은 일부 돈 많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의 것이어야 할 자연이 점점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생명의 터전과 우리의 삶의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인클로저 운동은 거제의 산과 바다를 사랑하는 저에게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땅은 모두의 것인데, 울타리를 치고 이제 여기는 내 땅이니 모두 나가라.’ 자연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누리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삶의 터전입니다.

저는 이 역사를 배우며 불평등이라는 괴물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제가 노자산을 지키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노자산의 생물다양성을 취재하는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개발회사 임원이 저희를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뭐 하러 왔냐. 여기 산 주인이다. 산에 들어가지 말라."

몸으로 길을 막으며 "지금 대흥란 이식 성공 발표에 사활이 달렸다. 아무 데도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국유림이었으며, 남부관광단지 사업도 아직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정부기관의 출입 통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국유림에 들어가는 것을 개인이 판단하고 허락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순간 저는 또다시 인클로저 운동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취재했던 PD님이 물었습니다.

"노자산 지키기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다른 곳도 개발하는데 왜 노자산은 안 되나요?"

저는 사회복지학에서 배운 인클로저 운동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평등이라는 괴물이 너무 무섭고, 이러한 상황이 너무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흥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대흥란은 개발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개발회사 임원은 "대흥란 이식 성공 발표에 사활이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생사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흥란 이식 성공 여부는 오직 전문가라고 정해진 그룹의 판단에 맡겨져 있고, 그 그룹에서 이식 성공을 발표하게 되면 이후 사업 승인 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대흥란은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고, 노자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생지입니다.

그렇기에 이식 과정은 더욱 투명해야 합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식 성공 여부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대흥란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한 종을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대흥란이 품고 있는 생태적 가치와, 그만큼 노자산이 가진 뛰어난 생물다양성의 의미를 지키는 일입니다.

노자산을 지키는 일은 곧 거제를 지키는 일이며, 결국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날 일행 중 서울에서 오신 분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참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거제에서 함께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내가 자란 거제보다 내 아이와 놀았던 거제가 좋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산과 바다에 갈 수 있습니다. 늘 우리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미처 몰랐던 자연. 우리는 늘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때 나도 뭐라도 해볼걸."

그런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도, 뭐라도. 지금 우리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마음을 열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현장에 한 번 와보는 것. 노자산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주변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노자산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7월 10일, 대흥란을 지켜주세요.

대흥란을 지켜야 노자산을 지킬 수 있고, 노자산을 지켜야 우리가 사랑하는 거제를 지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지원 작가는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니라, 불운과 부조리 속에서도 내가 지금 뭐라도 노력하고 있어서 느끼는 가치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이 우리의 희망이 됩니다.

16세기에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인클로저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훗날 아이들이 노자산을 걸으며 "그때 누군가가 지켜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숲을 만날 수 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살아요. 

거제뉴스와이드 (geojenewswi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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