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과 경상우수영의 활약 재평가 필요”...첫 학술토론회 열려
![[크기변환]토론회 단체 사진.jpg](http://www.geojenewswide.com/data/editor/2604/20260420111001_0a3fe1952cfe32b1e473cfdd4f8d97a6_d58t.jpg)
옥포대첩 434주년을 앞두고 경상우수사 원균과 경상우수영의 역할을 규명하는 첫 학술토론회가 4월 17일 오후 거제시공공청사 대강당에서 거제신문, 거제통영오늘신문 등 주최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거제역사문화연구소 김의부 소장을 비롯한 회원들, 옥포대첩기념사업회 배길송 회장, 거제시문화예술과 송황과장, 칠천량해전추모사업회 김광학 회장, 김일웅 통영문화원장, 이충실 통영사연구회장, 이순신 리더십국제센터 관계자들과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원주원씨 평택종중, 원균연구회 등 역사 문화계 인사와 관심있는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원균의 진실>을 펴낸 백승종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영의 활동에 관한 재평가’를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전란 초기 경상우수영에는 10척 정도의 전함만 있었으므로 ‘원균의 100척 수장설’은 허구다, 옥포해전에 앞서 사천 고성 곤양 등지에서 독자적 적선 격파로 일본 수군의 호남진출을 막았다, 경상우수영 장수들은 관할지역인 남해안 지리에 밝은 강점을 활용해 옥포 사천 당항포 해전 등에서 연합함대의 선봉을 맡았다, <징비록> 등 당파적 이해에 따른 사료 변조와 텍스트 왜곡, 조작으로 (원균에 대한)왜곡된 서사가 만들어졌다, 원균은 선무 1등공신으로서, 국가공식기록인 ‘선무공신교서’에 그의 수군이 왜선 130여 척을 격파하는 등 당대의 영웅적 면모와 전공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또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은 불공평한 공적 평가로 인한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 간의 복합적 갈등이었다, 당대는 한산대첩에 대해 이순신 원균 이억기의 공이 같은 것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악의 이분법적 신화를 넘어 객관적인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하며, 악마화된 원균의 위상을 복원하고, 경상우수영의 공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순신전력연구소 이봉수 소장은 ‘장문포 해전 당시 경상우수군의 활약과 전적지 위치 비정’에서 원균 부대가 수륙합동 작전의 선봉에 섰으며, 장문포는 장목, 외질포는 칠천도 옥계, 오비질포는 연초면 오비 등이라고 밝혔다.
또 송재식 거제역사문화연구소 교육위원장은 ‘임진왜란, 경상우수영의 활약’ 토론에서 임진왜란 최초 해전은 원균함대가 이끈 1592.4.28. 가덕해전이었다, 지형과 조류에 익숙한 경상우수영의 역할이 컸으며 조선수군 1차 출정은 경상우수군과 전라좌수군 모두의 승리였다고 주장했다. 옥포해전 참전 경상우수군 13명의 명단을 제시하며 옥포대첩기념공원 등에 기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훈 원균연구회 이사는 토론문 ‘거제와 원균, 왜란을 승리로 이끈 일등 도시, 1등공신’에서 거제를 비롯해 경남지역 선조들로 구성된 경상우수군은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지켜낸 큰 공적이 있다, 옥포대첩축제에서 원균과 경상우수영의 성과를 재평가 하고 학술행사 등을 개최할만 하다고 말했다.
청중에서는 거제도는 경상우수영의 본거지였는데 이에 대한 토론회가 처음으로 열려 의미가 있다, 거제역사에 대한 거제시민의 관심과 자부심이 필요하다, 경상우수영성(가배량성)을 국가사적으로 격상해야 한다, 칠천량해전공원에도 이순신만 있고 원균의 자료는 없다, 새로운 사료 발굴 내용이 부족한 토론회였다, 관련 토론회를 지속화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는 등 의견이 나왔다.
칠천량해전과 관련, 조선 수군 전멸이 사실인가 등에 대한 질문에 백 교수는 “칠천량 해전 참가 판옥선은 전체 180척 중 90척, 수군은 9000명 수준이며, 전사한 장수는 원균 등 3명이고 전사자 총원은 1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칠천량해전과 연구사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거제뉴스와이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