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글〕여행, 반전에 반전을 더하다
새로운 설렘이다. 밤새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 전날처럼 조금 설레기도 했거니와. 처음으로 참석하는 문학기행이라 혹시 늦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낯선 분들과의 조우, 새로운 장소, 그리고 나에겐 아직 조금 어색한 주제 ‘문학기행’이 이끄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심이 항상 있었기에 긴장한 듯하다. 노란 버스에 오르는 순간 ‘참새 짹짹’의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자주 다니는 길인데 오늘은 풍경이 다르다. 길가에 수국이 한창이다. 수국은 크기는 작지만, 하얀색, 붉은색, 보라색, 파스텔색, 그리고 혼합된 색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무질서와 우연성의 경이로움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수국은 토질에 따라 꽃의 색이 다르다. 토양의 성분을 온몸으로 반사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동심을 지닌 신기한 꽃이다. 오늘 내 모습하고 어울리는듯하여 순간 얼굴이 붉어짐은, 내면의 색을 얼굴에 나타내는 수국과 억지로라도 닮았다고 자위해 본다. 수국뿐만 아니라 여름을 앞둔 신록들도 태양의 고단함을 피해 있지만 는 듯 생기 있고 활발하다. 산천초목들의 감추어진 모습이 비로소 보이는 것 같다.
‘비워야 새롭게 채워진다.’라는 말이 실감 된다. 빈 병속에 든 공기를 비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을 채워 넣는 것이듯, 문학기행이 무질서하게 꽉 찬 나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시원한 물이다. 잘 왔다. 오늘 무척 잘 왔다.
먼저 주목적지인 정지용문학관이 있는 옥천에 내렸다. 점심으로 버섯 정찬을 먹었다. 송고 버섯이라는 다소 생소한 버섯인데, 표고버섯과 송이버섯 품종을 섞었다 한다. 서로의 장점만 살린 버섯 맛이다. 송이의 감칠맛과 표고의 쫄깃함의 어울림은 수국 빛깔만큼 다양한 맛이라고나 할까. 입안에서 번지는 향기를 음미하며 수국의 꽃잎을 상상하는 호사로움이 즐겁다.
정지용 문학관, 아담하지만 조금은 초라해 보임직도 한 건물이다. 그것이 오히려 ‘향수’라는 시와 너무나 어울리게 소박하다. 해설사의 말로는 예산이 없어 작게 지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대단한 건축물로 벤치마킹하러 온다고 하니 새옹지마 같은 세월의 장난이다. 기쁨도 슬픔도 절망도 희망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또 다른 모습임을 깨우쳐 주는 문학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 개울 건너 느티나무 밑에서 동네 분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시원한 그늘에서, 동네 아낙들의 빨래터 대화처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인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얼룩백이 황소의 게으른 울음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순간, 마을 어귀 고택을 개조한 한우식당 집은 정지용문학관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져 의아함을 자아냈다. 게으름에 대한 교훈인가. 생뚱맞은 현상에 피식 혼자 웃어 본다.
산청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폭우가 내렸다. 폭우와 어두움이 마지막 목적지인 산청 수선사까지 닿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기우였다. 터널의 입구를 들어설 때까지도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던 폭우는 출구를 통과하자 화창한 햇살로 변해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온 느낌이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반전이 이와 같을 것이다. 문우들과 함께 터널을 통과하고 반전을 맞았기에 느낌은 배가 되었다.
수선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굳게 닫힌 사찰의 철문이었다. 개방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 한다. 주요 사찰 개방이 금지된다는 말이 아니고 사찰 전체의 문이 잠겨있다. 정말 대단한 혼돈이다.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무척 고단함을 느끼셨나. 부처님도 마음을 닫으면 우리는 어디에 기대어야 할까.
호기심에 잠긴 대문 너머로 바라본 수선사는 정원이었다. 연못과 연꽃이 있는 잘 꾸며진 정원, 나에겐 놀라운 반전이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사찰조차 정원의 주제가 될 수 있다니.’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 마음속 부처님도 안심하신 듯 미소 짓는다. 산청에서 수수한 청국장에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귀향길에 올랐다.
통영대교를 건너 차가 거제로 들어섰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거제가 어떤 이에게는 휴양지이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나에겐 자연의 생존 법칙이 난무하는 정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오늘의 경험상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닌듯하여 반전을 느낀다.
대부분의 단체 여행이 그렇듯 마지막 돌아오는 차 안은 서로의 감정을 소통하는 화합의 장이다. 문우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공감하면서 돌아오는 길은, 먼 곳을 여행 갔다 돌아오는 고단함과 푸근함이 어우러진 편안함이었다.
오늘 잘 왔다. 하루 내내 반전과 새로움을 발견한 즐거운 문학 기행이었다. 놀라운 것은 가라오케 반주가 없어도 노래할 수 있고, 소주 한 잔 없이도 공감과 유대감이 강화되는 느낌은 정말 새로움 이었다. 오늘 나의 문학기행 주제를 ’반전‘이라 하면 정지용 선생님이 삐칠까.
신유현
· 거제 아양 출생
·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무역학과 졸업
· 전)삼성전자, 델컴퓨터, AMD 코리아 근무
. 현)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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