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품섬 ‘거제 내도’, 그 섬에 다시 가야 할 이유?

대한민국 명품섬 ‘거제 내도’, 그 섬에 다시 가야 할 이유?

“여러분의 바로 앞으로 보이는 섬이 내도가 되겠습니다. 왼편에 공곶이가 있으며 내도 뒤에 보이는 섬이 외도입니다. 맑은 날 내도에서는 일본의 대마도를 볼 수 있으며(중략) 이상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거제 일운면 구조라항에서 도선을 타고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내도(일명 안섬)로의 여행은 재치 만점 선장의 해설과 함께 기분 좋게 시작됐다. 함께 탄 여성 승객들은 선장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박장대소하며 ‘센스쟁이 오빠!’를 외치는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동백나무가 많은 내도는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동백나무를 사진에 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이번 방문은 갑자기 이뤄졌다. 내도를 생각만 하고 직접 가보지 못했는데 내도어촌계 방금대 계장이 황토찜질방을 만들었다며 방문을 요청해 왔다.

도선을 운영하는 내도영어법인 최철성 대표가 자신의 펜션을 개조해 황토찜질방을 만들고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무료로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3평 규모의 찜질방은 한꺼번에 1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방금대 계장은 황토찜질방을 계기로 내도에 방문객이 좀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특히 2월에 개장할 식당(내도식당)은 방문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이날 방문을 계기로 내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주말에 다시 한 번 방문해서 내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 명품섬 2호

주말 오전 9시 배를 타기 위해 씻는둥마는둥 급하게 구조라로 향했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단위로 오후 5시까지 5번 운항하는 도선은 왕복 기준으로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6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한 낚시객 몇 명과 국립공원공단 직원 몇 명, 1박을 계획한 연인 등 도선은 첫배라서 그런지 주말치고는 한산했다.

관광객들을 위해 황토찜질방을 만들어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최철성 대표(왼쪽)와 방금대 어촌계장(오른쪽).

내도 선착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멋진 풍경 속에서 즐기는 낚시라서 그런지 밤을 새웠는데도 지친 기색은 없었다. 살림망에도 제법 무거워보였다.

잠시 구경을 마치고 본격 내도 탐방에 앞서 ‘탐방안내센터’를 방문했다. 예전 작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던 구판장 규모의 가게에서는 각종 생필품과 함께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커피머신이 구비돼 있었다.

바로 옆에는 특산물판매장이 있고 그 옆으로 국립공원 직원들이 상주하는 사무실이 있다. 안내센터라고 간판만 붙었지 커피한잔 사들고 센터 앞 벤치에 앉으면 풍경 좋은 커피숍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심 좋은 국립공원공단 직원은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내도에 대해 자랑했다. 바로 옆 외도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멋을 느끼기에는 내도가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이 대한민국 명품섬 2호로 지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몇 차례 강조했다.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본격적인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직접 겪어보라

내도는 공곶이로 대표되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 속한 섬으로 면적 0.256㎢, 해안선길이 3.9㎞, 최고높이 131m의 작은 섬이다. 인구는 10여 가구에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내도에서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과 육지를 있는 도선, 그 너머로 공곶이가 보인다.

이 섬은 해안선을 따라 탐방로가 개설돼 있으며 전체 길이는 2.6km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내외면 둘러볼 수 있다. 탐방로는 선착장 주변에 있는 마을의 왼쪽을 끼고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개설돼 있었다. 탐방로를 따라 세 개의 전망대(세심, 신선, 희망)가 있다.

탐방로에 본격 들어서면 먼저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나오고 곧바로 오르막이다. 몇 걸음 나아가면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뻗은 편백나무 숲과 마주하게 된다. 숲 체험길이다. 오르막이 조금 가파르지만 편백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인지 숨차다는 느낌은 없었다.

계속 걷다보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로 인해 한낮인데도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탐방로 주변을 가득 메운 동백나무로 인해 어둠이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내도가 자랑하는 세 개의 전망대 중 첫 번째로 마주할 세심전망대에 이르기 바로 직전 ‘동백포토존’이 나타났다. 탐방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동백나무가 아름드리로 뻗어 있고 반대편에는 대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옛 시골에서 봤던 작은 오솔길을 그대로 닮은 내도의 탐방로는 정겹기 그지없다.

두 종의 상록수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터널을 만든다. 그리고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풍경이 연출된다. 동백꽃 낙화가 절정을 이루는 3월 이후가 가장 멋지겠다 싶어 재방문을 다짐하는 이유 하나를 여기서 만들었다.

세심전망대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도 곳곳에 보인다. 돌로 쌓은 석축은 물론이고 동백포토존 주변의 대나무도 예전에는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소소한 것들에 이런저런 의미를 더하다보니 어느새 세심전망대에 이르렀다. 왼쪽의 서이말, 오른쪽 끄트리머의 외도. 두 지점 사이로 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도 볼 수 있다는데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오전에 탐방을 나서면 햇빛의 방해로 전망대의 경치를 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역광으로 인해 제대로 그림이 담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태양이 비추는 멋진 비경을 두 눈과 마음속에 담을 수는 있다.

심장이 없는 기계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감동이 매 순간 펼쳐지고 있었다.

최고의 표현은 외마디 탄성

세심전망대를 지나 다음 목적지인 신선전망대로 향하면서 계속해서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좋은 경치를 보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눈이 발아래 머무는 순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연인숲탐방로. 연인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 뭔가 설명이 있겠지?

“바로 너였구나!”

탐방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발걸음을 아무런 투정 없이 받아줬던 부엽토가 이유였다. 지난 가을 떨어진 잎사귀들이 길 위에 내려 앉아 비와 바람, 서리 등을 겪으면서 딱딱함은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위를 지나는 모든 생명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은 목적지로의 이동도 즐겁게 만들었다. 어느새 신선전망대로 향하는 외길인 ‘연인삼거리’에 도착했다. 갑자기 등장한 연인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탐방로도 ‘연인숲탐방로’로 이름붙어 있다.

연인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 뭔가 설명이 있겠지?

뜬금없는 연인숲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걷다보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작은 조약돌을 쌓은 탑들이 곳곳에 보인다. 연인들이 와서 쌓았을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친절한 국립공원공단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설명했다.

두 그루의 웅장한 소나무(곰솔)가 작명(作名)의 단초였다. 생김새가 한 그루는 여자를, 다른 한 그루는 남자를 형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누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연인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관리자는 “왜 그런지는 형상을 보면 짐작이 될 것”이라고 안내판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외마디 탄성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신선전망대의 주변 풍경.

그리고 신선전망대. “오~” 하는 외마디 탄성으로만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왼쪽의 서이말에서부터 외도, 해금강을 아우르는 바닷가 풍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다시 와야 할 이유

신선전망대를 구경하고 다시 연인삼거리를 지나 마지막 전망대인 ‘희망전망대’로 발길을 옮겼다. 그 길을 가는 동안에도 주변의 경치, 옛 시골에서 봤던 작은 오솔길을 그대로 닮은 탐방로는 정겹기 그지없었다.

희망전망대의 경치도 다른 전망대와 비교해 손색없었다.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해금강과 공곶이 등을 한가운데서 품고 있는 섬인데 그 풍경이 오죽하겠는가. 바다 위에 배 한척 지나가면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는 곳이 내도였다.

그렇게 탐방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오전 11시를 10여분 앞두고 있었다. 11시 도선이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이때부터 제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했다는 것보다 탐방하는 동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강박감이 들었다. 3km도 못 되는 탐방로를 두 시간 걸었으면 분명 여유롭게 걸었다. 그런데 뭔가를 빼먹은 이 느낌은. 아련한 그리움이라 할까. 뭘 두고 왔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이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다시 국립공원공단 직원을 만나 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결론내리지 못한 그 느낌의 이유가 조금씩 손에 잡히는 기분이었다. 두 시간만으로 이 섬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나그네가 지나 온 시간동안 계속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 사람의 손길을 최대한 자제시킨 탐방로. 아주 오래 전 여느 시골에서 마주했던 것과 꼭 닮은 숲속 길. 그리고 이 섬이 간직한 이야기와 그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바다 위에 배 한척 지나가면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는 곳이 내도였다.

1박도 하지 않고 내도를 단지 두 번 방문한 게 전부였던 필자에게 내도는 딱 그만큼만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서 앞서도 이유를 붙였지만 3월 중순 동백꽃 낙화가 절정일 때 다시 한 번 이 섬을 찾자.

시간에 쫒기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말자. 아마 그때쯤이면 주변 공곶이의 수선화가 절정을 이루고 겨우내 움츠렸던 초목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일어설 테지. 아련한 그리움 같은 그 무엇이, 정말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좀 더 느리게, 느리게. 그냥 걷자. 더 느리게 걷고, 더 많이 느껴보자. 내도는 분명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있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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