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후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비’ 마침내 건립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기리고자 거제시와 더불어 거제유족회에서 작은 적성을 한데 모아 이곳에 빗돌을 세우고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무릎 꿇고 맑은 술 올리오니 이제 그 가슴에 맺힌 한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옵소서.”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 마련된 ‘민간인희생자 기억·평화공원’에서 21일 ‘한국전쟁전후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및 합동 위령제’가 봉행됐다.
올해로 11회 째를 맞는 위령제는 거제시의 지원으로 유족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위령공원 조성과 함께 위령비 제막식까지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거제시와 함께 민간인희생자거제유족회(회장 이병학) 주관으로 열린 이번 위령제에는 변광용 거제시장, 서일준 국회의원, 옥영문 거제시의회의장, 도·시의원과 김복영 전국유족회장 등 100여명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위령비 제막식을 시작으로 유족회 경과보고, 감사패 전달, 추도사, 추모공연, 전통제례에 이어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이병학 유족회장,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는 평화의 공원으로”
이병학 회장은 주제사를 통해 "한국전쟁을 전후로 거제지역에서는 1,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이른바 ‘거제민간인희생사건’과 ‘거제지역 보도연맹사건’으로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는 만행이 저질러졌다“며 ”엇갈린 이념과 허울 좋은 국가권력에 의해 영문도 모르는 채 포승줄에 묶여 수장 당하거나 총부리에 무참히 짓밟힌 그 때의 처절하고 통한의 절규가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며 이념대립과 폭압에 숨진 영령들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어 “숨겨지고 뒤틀린 아픈 현대사를 바로잡고 유족들의 절절히 맺힌 한을 벗기고 풀어달라며 진실규명 노력과 함께 위령공원 건립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었다”며 “70년이 흘러 거제시의 지원과 유족회의 작은 정성이 한데 모여 마침내 임들의 이름을 빗돌에 새겨 그 정을 기리려 하니 가슴이 저민다”면서 위령비 건립에 대한 거제시의 예산지원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유족회장은 “지심도 앞바다가 멀리 보이는 이곳, ‘기억평화공원’이 후손들의 성지가 되고 낡은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빚어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는 평화의 공원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변광용 시장, 서일준 국회의원, 옥영문 의장 ····“진실규명, 유족들의 아픔 치유해야”
이어 변광용 시장은 추도사에서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사건은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빚어진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며 “억울한 죽음이 헛되이 잊혀지지 않도록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 유가족의 피맺힌 한이 풀어지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서일준 국회의원은 “70년이 흘러 유가족의 숫자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그 모진 세월 속 아픔과 설움을 달랠 수 있도록 희생자들의 온전한 명예회복과 역사적 재평가를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것”이라며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의원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옥영문 의장은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사건은 암울한 시기에 국가가 저지런 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었으며,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적법절차 원칙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며 “불행한 역사를 통해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위령사업과 명예회복으로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밖에 시민단체를 대표해 유천업 전 거제경실련 공동대표,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이 잇따라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날 추모공연에서는 유족회 회원이자 거제문협 이사인 최현배 시인의 추모시 낭송, 거제소년소녀합창단의 추모 노래, 김현숙 국악연구소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원한을 풀어 극락으로 천도하기 위한 해원무를 추며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빌었다.
이날 거제유족회는 통한과 고통의 70년 세월을 견뎌온 유족들의 오랜 염원인 위령공원 조성과 진실규명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변광용 시장과 노재하 시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또 시민사회를 대표해 위령공원건립 공동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천업 전 거제경실련 공동대표와 행정과 천진완 시정계장은 공로패를 받았다.
‘기억·평화공원’ 안에 ‘평화의 눈물’ 비(碑), 각명비(刻銘碑). 평화비(平和碑) 세워(위령비 사진참고)
한편 거제유족회는 거제시 예산을 지원받아 이번에 장목면 외포리 산227-3번지에 조성된 위령공원에 대해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사건으로 희생된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담아 ‘기억·평화공원’으로 명명했다.
유족회는 낡은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빚어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극복하며 앞으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사건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과거사정리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자료 등을 정리해 안내판을 설치하고 경건한 참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기억·평화공원’ 안에 위치한 위령비는 참배를 진행하는 경건한 공간으로 원형의 기단 위에 세 개의 빗돌과 사각형의 제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7m 지름의 원형기단 위에 세워진 세 개의 빗돌은 왼편부터 ‘평화의 눈물비’, ‘각명비’, ‘평화비’로 이름 붙였다.
중앙 각명비는 높이가 2.75m이며, 양측 비석은 3.5m 높이에 넓이 0.9m, 두께 0.4m로 화강암 위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왼편 ‘평화의 눈물’ 비(碑)는 국가권력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무참히 쓰러진 억울한 죽음과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말문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온갖 핍박과 서러움 속에 지냈던 유족들의 통한과 고통의 세월을 눈물로 형상화했다.
또 비극적으로 희생된 수많은 분들의 피눈물이 모여 하나의 큰 눈물이 되고, 이제는 모든 아픔을 감싸고 화해와 용서를 바라는 평화의 마음을 담았다.
하단부에는 거제지역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용서와 화해를 통해 ‘평화의 도시’거제를 염원하는 추모기(追慕記)가 새겨져 있다.
중앙에 들어선 각명비(刻銘碑)는 한국전쟁전후 거제지역 ‘민간인희생사건’과 ‘국민보도연맹희생사건’ 등과 관련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신청사건을 중심으로 한 조사에서 신원이 확인된 159명을 포함 200명의 희생자 성명을 기록했다. 실제 거제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은 1,000명에 이르러는 것으로 추정된다.
각명비 상부의 삼각형 모양의 조형물은 1,000여 명에 이르는 죄 없는 민간인들이 일운면 구조라와 지세포에서, 동부면 서당골에서, 둔덕면 하둔리 죽전에서, 연초면 송정고개에서, 지심도와 가조도 앞바다 등지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수장당하거나 총검으로 무참히 쓰러졌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거제도를 형상화했다.
그 아래 포승줄은 부당한 국가권력의 폭력과 만행을 상징하고 있다.
오른편 평화비(平和碑)는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영령들의 해원과 안식의 세계, ‘평화’의 영원성과 완전함을 기원하고 있으며, 양측의 직각 삼각형 모양의 사선은 파도를 형상화하여 푸른 해원을 향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평화 의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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