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민의 풍물기행] 지세포항을 품고 사는 사람들...
지세포항에 가면 사람도 바람도 그리고 물고기도 자연산이다. 방금 내린 단비로 촉촉한 국사봉을 가로질러 남쪽바닷길로 달리다보니 어느새 갯내음이 섞인 무공해 소금냄새가 푹푹 풍겨온다.
지세포항을 품고 있는 대신마을. 아침과 저녁 무렵 적당한 물때가 되면 주낙장어배가 뜨기 시작한다. 포구에서 재미있는 일은 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이다. ‘혜성’, ‘광명’, ‘미조라’, ‘대영’, ‘한성’...단순한 것 같지만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과 로맨스가 고스라니 담겨 있다. 아직까지 주인에게 한없이 충성하는 배들. 선원들이 하선하면 조용히 갯바닥에 몸을 뉘이고 휴식 할 것이다.
바다 속 음식 중 ‘스테미너’하면 떠오르는 어종이 있는데 바로바다장사 ‘장어’이다. 가을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몇 달 동안 수만리 바다를 헤엄친다는 것만으로도 장어는 이미 심리적으로 강정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력에 좋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거제바다사람들은 봄 도다리, 가을전어보다 여름 장어를 최고로 칩니다.”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세포항에서 만난 박종만 어촌계장(76세). 박 씨의 장어예찬이다.
박씨는 집안대대로 지세포에서 살아왔고 군재대후 줄곧 선망어선기관장을 하다가 1996년 고향에 돌아와 지금은 어장 일을 한다. 봄·여름에는 쥐치, 돔, 농어, 장어, 오도리를 잡고 겨울에는 새우, 아귀를 가을에는 가덕도앞바다에서 삼치를 잡는다고 지세포 자랑을 늘어놓는다. 인상이 좋고 기품이 있다.
어촌계장일은 10년째. 처음4년을 하고 재신임을 받아 다시6년째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네어른들에게“너는 지세포 뱃놈이니까 뱃놈답게 살아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뱃사람자긍심 같은 게 읽힌다. 어촌계원이 30명인 지세포 어촌공동체주업 중 하나는 주낙.
주낙은 낚시도구의 일종이다. 한 줄에 여러 개의 바늘이 달려 있다. 인근장승포가 그렇듯 이 일대는 장어가 주종. 그러니까 주낙장어가 지세포 생계를 짊어진 어업이다.
바다사정은 어떨까. 어업협정과 레저용 낚싯배로 인해 바다가 좁아진데다 어업종사자 평균연령이60~70대로 고령화인데 반해 귀어인구는 감소해 어민후계자양성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 바다자원이 줄어드는 것도 걱정. 사람 사는 일이 어디라고 다르겠느냐만 바다사정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포구노천에는 아저씨 아주머니 손놀림이 바쁘다. 지세포리어촌계공동작업장 곳곳에 쳐진 차양 막 그늘에 서너 명씩 모여 앉아 낚싯줄과 바늘을 손본다. 장어주낙이다. 줄은 둥근 뿔 통에 둘둘 담고 바늘은 통 테두리에 촘촘하게 꽂는다. 노천어디에도 장어주낙을 담은 뿔 통이 삼단사단 재여 있다. 줄은 끝이 보이지 않고 바늘은 끝없이 이어진다. 저 바늘을 덥석 물면 장어는 대체 몇 마리나 될까.
“백에서 삼백 킬로는 잡지요. 미끼는 멸치, 정어리 아니면 오징어이고 바늘은 135개짜리가 있고”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손가락마디를 잘라낸 실장갑을 낀 아낙네들은 배를 타는 대신에 주낙채비를 차리는 따위의 거드는 일을 한다. 장어주낙을 한 바퀴감고 받는 돈은 8천원.
거제붕장어 대표산지는 경남홍도(鴻島·갈매기 섬)앞바다다. 거제에는 100년이 넘는 전통방식의 주낙붕장어 잡이가 이어지고 있다. 주낙장어 잡이는 원시적인낚시법인 주낙. 그러니까 오징어 등을 바늘이 꿴 낚시를 바닥까지 던져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낚시를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조업한다. 게다가 장어는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밤새 잠을 못자고 주낙을 걷어 올려야한다.
이런 방식은 예나지금이나 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적은돛단배가 5t연안연승어선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2000여 가구가 사는 지세포항에는 주낙장어 배5척이 전통 낚시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어촌계역시 주낙장어 배1척이 있다. 하루60~70통(1통의 길이 약600m)의 주낙을 뿌리고 거둬들인다. 헝클어진 주낙을 다시사리는 일은 바다에 나가지 않는 동네어르신들 몫이다.
지세포 쌍둥이아빠를 모르면간첩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혜성호선장 김성재(63)씨는 “40년 동안 고깃배를 탔다”며“주낙은 아랫줄에135개 남짓 낚시를 메달아 장인어르신이 매일 썰어주시는 싱싱한 오징어를 미끼로 사용, 수심80~100m심해에서 연중 조업하지만 먹이활동이 활발한 여름철에 잡히는 장어가 씨알도 굵고 힘이 좋으며 어부들 사이에선 전설의고기로 불리는 ‘돗돔’도 가끔씩 장어주낙에 잡히기도 한다.”라고 설명한다.
김 선장의 말처럼 장어는 여름장어가 기름지고 맛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장어는 허준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보양음식으로 여름부터초가을이 제철인데 단백질을 비롯해 각종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맛도 좋지만 영양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무게가1~5Kg가량 되는 대물주낙장어는 같은 양의 쇠고기에 비해 거의200배가 넘는 비타민A를 함유하고 있다. 또 불포화지방을 함유해 혈관이 노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스트레스해소, 노화방지 및 허약체질개선과 병후회복에 널리 쓰인다.
장어애호가들은 보통무게가Kg당 1~2마리 정도의 주낙으로 낚은 큰 장어를 선호하는 탓에 김 선장의 아내 신정숙(58)씨가 주방을 맡고 있는 ‘쌍둥이 회 장어식당’의 주낙장어는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장어탕은 더위에 지친여름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여름장어의 진미는 역시구이를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식당한쪽 편에 석쇠를 얻어놓고 장어를 구우면 고소한 향기가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진동하는데 “팔순노인도 냄새를 맡으면 힘이 불끈 솟는다.”는 설화(說話)가 정말 실감난다.
석쇠위에 노릇노릇이 맛있게 구워진 장어구이, 두툼한 살점을 한 숟가락접어 초고추장에 푹 찍은 후 신 씨가 텃밭에서 손수 가꾼 깻잎에 부추, 마늘, 고추, 생강 채 이렇게 한 잎 싸서 눈 딱 감고 한번 먹어보자. 새콤한 초장과 기름진 보양식주낙장어 살이 어우러진 그 맛이란 비록주당이 아니라도 소주 한 병 생각 안날수가 없다.
“장어를 제대로 구웠는지 알아보는 비법을 알려 달라”고 하자 식당여주인 신씨는“장어구이는 장어와 사람이 땀을 흘려야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했다.“장어를 불에 올리면 기름이 몸에서 빠집니다. 사람도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린 다음 물을 마시면 온몸으로 흡수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려면 장어를 불 위에서 무수히 뒤집어줘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장어를 구울 때 만 번 돌려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뜨거운 불 앞에서 장어를 굽는 사람도 엄청나게 땀을 흘려야 하지요.”
거제시청여자씨름단 감독, 선수들이 ‘제52회 회장기전국장사씨름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스테미너 보강을 위해 지세포수협 골목에 위치한 쌍둥이 회 장어식당‘을 찾았다.
거제시청소속 이다현 여자천하장사는“부산에서나 통영에서 구경도 못해본 탁월한 맛이 있다. 자체에서 나오는 육즙이 다른 장어집이랑 엄청난 차이가 난다. 먹어본 사람만이 주낙장어의 맛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유란 매화장사에게 식후소감을 묻자“바닷장어라고 비릿하고 느끼할 줄 알았는데 입에 들어가자 말자 녹아드는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게 환상적 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KBS 6시 내 고향’에 방영되어 명품 맛 집으로 소문 나있는 이 식당의 또 다른 추천 메뉴는 세코시(뼈째 회)회다. 탱글탱글하게 살아 있는 육질의 장어 회는 회를 뼈째로 씹어 먹으면 육질이 차지고, 고소해 여름입맛을 사로잡는다. 그 뿐만 아니라 중간유통과정이 없어 가격도 저렴하고 선장부인 신 씨 특유의 인심으로 가득히 내어주는 장어구이, 장어두루치기, 장어전골, 장어탕, 장어덮밥(점심특선)장어매운탕, 꼼장어, 봄 도다리쑥국, 겨울 물메기탕 등 다양한 메뉴도 준비되어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거제대표 맛 집‘쌍둥이 회 장어식당’의 예약 및 택배주문문의는 전화(010-9322-5385)를 통해 가능하다. -경남거제시일운면 지세포리 해안로97-
*주변관광지
여름거제여행은 푸른 바다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가대교 송정IC를 빠져나와 옥포방면 국도를 타면 여름장어로 유명한 지세포항에 닿는다. 국가지정어항인 지세포항은 거제시해양공원으로 유명하지만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지역으로 더 명승을 얻고 있다. 인근의 와현, 구조라 해수욕장과 조화를 이룬 열린 공간으로 매년 7월29일부터 31일까지 지세포해양공원과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거제바다로 세계로’ 축제가 열리고 있어 거제시민들과 국내외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문화해양스포츠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글·사진: 손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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