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글〕그래도 씸벙게는 맛있다

〔아침을 여는 글〕그래도 씸벙게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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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며칠 전 서둘러 떠났다. 벚꽃이 만발한 이른 아침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의 딸 결혼식 날에 떠났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을 하였다. 예식 한시간전에 날아든 부고에 친구들은 다들 전전긍긍 하였다. 슬픔과 기쁨, 죽음과 삶이 겹쳤기에 예식 하는 동안 혼주인 친구에게 부고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다가 예식 후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대부분 친구들은 창원으로 조문을 서둘렀다.

나와 몇몇 친구는 떠난 친구에게 가지 않았다. 그 친구와 자주 가던 횟집에 곧장 들러 쓴 소주를 마셨다. 취하지 않았다. 친구를 잘 알고 있던 주인이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씸벙게를 삶아 내어왔다. 일급수에 서식하는 털게 일종인 왕밤송이 게인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씸벙게라 불렀다. 어릴 적 동무들만 아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암호 같은 음어이다. 횟집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내내 울기만 하던 친구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슬픈데 씸벙게는 맛있네, 알이 차서 더 맛있네, 친구도 참 씸벙게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그날 우리는 취하였다. 슬픔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씸벙게에 만취하였다.

몇 달 전 후회되는 사건이 있었다. 동창회 모임을 앞둔 어느 날, 점심자리에서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어 생활하시는 분이 발견한 특효약 얘기를 들었다. 아픈 친구 생각이 났다. 꽤 비싼 금액이었지만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일종의 죄의식 같은 거였을까. 그동안 친구에게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연유인지도 모른다.

“죽은 뒤 문상하면 친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오만 원, 십만 원 들고 가서 종이 위에 이름뿐인 친구 만나느니, 차라리 며칠이라도 더 견딜 수 있게 힘을 보태자. 나는 문상 안 갈 거다. 그 돈으로 지리산 약초를 주문하겠다. 생각이 같은 친구들은 동참했으면 좋겠다.”

동창회 날 모임에서 열변하였는데. 이내 후회하였다. 내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는데,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지 마라.”

몇몇 친구의 얘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편한 마음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평소 그 친구에게 소원하였던 내 미안함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태려 하였으니 더욱 그랬다. 며칠 후 몇몇이 전화를 걸어왔다. 십시일반으로 보태겠단다. 그렇게 해서 지리산 약초는 전해졌다. 동참한 친구들의 이름을 알려줄 수 없었다. 동참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불필요한 서운함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잊혀가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은 듯하다. 삼일에서 오일이면 충분한 듯 우리는 그렇게 이별 의식을 진행한다. 어떤 이는 고인을 위로하기 위해, 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또 어떤 이는 마음의 후회를 지우기 위해 조문한다. 본인은 살아 있기에 어쩌면 마음의 앙금을 지우고 편안해지고 싶어서가 아니겠는가.

지리산 약초로 내 마음의 침전물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이기적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벌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그러나 혹시 그것으로 벚꽃이 만개한 봄날까지 견뎠을지도 모른다는 궁색한 자기최면으로, 조문하지 않음을 핑계 삼아 보지만, 후회가 덜해지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오늘 씸벙게는 맛있다. 특히 지금이 제철이다. 내년 봄에는 더 맛있을 것이다.

신유현

· 거제 아양 출생

·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무역학과 졸업

· 전)삼성전자, 델컴퓨터, AMD 코리아 근무

. 현)자영업

▪ 종합문예지 월간문학세계 제342회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2023.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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